◆화의기업 일괄 퇴출 배경 법원이 화의기업 일괄 퇴출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는 상당수 화의기업의 원금 변제 시기가 작년 말부터 대거 돌아왔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7∼2000년 중 화의를 인가받아 3∼4년간 원금 상환을 유예받았던 기업 중 40개사는 지난해 말부터 원금 상환 기일이 돌아오자 한계에 부닥쳐 연체하기 시작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들 기업을 그대로 놔둘 경우 알맹이를 모두 까먹은 채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라며 "어차피 망할 기업인 만큼 빨리 파산시켜 '빚 잔치'를 해야 채권자들이 받을 수 있는 몫이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화의 인가 당시 자산 규모가 2백억원대였던 A기업은 3년 뒤 파산하자 채권자들에게 돌아온 몫이 수천만원에 불과했다고 법원은 설명했다. 법원은 부실한 화의기업을 빨리 퇴출시키지 않을 경우 경영주와 친분이 있는 일부 채권자에게만 빚을 갚는 '편파 변제'가 일어날 수 있으며 심지어 경영주가 재산을 빼돌리는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업이 퇴출되나 퇴출 대상은 이자 또는 원금을 연체하는 기업으로 매출액 및 영업이익 규모가 화의를 인가해줄 때 내건 조건에 턱없이 못미쳐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기업들이다. 법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35개 가량이 퇴출 대상"이라며 "퇴출 대상에는 상당한 규모의 기업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무 변제 능력이 없더라도 △영업이익을 내면서 채권단과 채무 재조정을 논의 중이거나 △구체적인 기업인수합병(M&A)이 진행 중인 기업은 일단 퇴출이 보류될 전망이다. 최근 1조원대의 외자 유치에 성공한 (주)진로가 여기에 해당된다. (주)동신처럼 빚을 제때 갚아온 상당수 기업들은 화의절차를 계속 밟거나 채권단과 협의를 거쳐 화의계획상의 기한보다 빨리 졸업할 수도 있다. 화의가 취소된 기업들은 파산절차에 들어가기 전 법원에 '즉시항고' 형태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도 있다. ◆시장에 주는 영향 우선 은행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화의기업에 빌려준 돈에 대해 대손충당금(담보대출 20%,무담보대출 50%)을 쌓아놓은 상태지만 이들 기업이 실제 파산하게 되면 손실액은 충당금 규모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기침체로 인해 가뜩이나 기업대출을 꺼리고 있는 은행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깐깐하게 기업대출을 운영할 경우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진로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화의기업의 부채 규모가 수십억∼1천억원 수준에 불과한 데다 상장도 안된 만큼 시장에 주는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