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크전쟁의 조기 종결 기대감이 꺾이면서우리 경제가 깊은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다. 아직은 수출이 받쳐주고 있기는 하지만 소비가 너무 얼어붙은데다 기업은 투자를 꺼려 성장 동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외 경제 연구기관들이 앞다퉈 올 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고 급기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다음달 경제전망을 대폭수정하기로 했다. 이미 경상수지는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물가는 4%대에 다다랐으며 1.4분기 성장률은 4%대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침체의 골 깊어지는 경제 지난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산업활동 동향은 실물 경제가 급격히 가라앉고있음을 보여줬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매출이 크게 줄면서 민간소비 지표인 도.소매 판매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8% 감소했다. 도.소매 판매가 줄어든 것은 98년 12월 이후 50개월만이다. 수출호조로 산업생산은 10.2% 늘었으나 설비투자는 4% 줄어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소비.투자.수출 중 소비와 투자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은 성장 동력이 약화됐다는 의미여서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통치 후반기 내수 부양정책의 휴유증으로 돈이 잔뜩 풀려 시중단기자금(만기 6개월이하)은 380조원에 육박하고 있으나 기업의 설비투자로 연결되지않고 있다. 대내외 경제 불투명성에 북핵문제까지 겹치면서 기업이든 개인이든 현금을 움켜쥐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 와중에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까지 터져 기업간 자금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면서 한계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그나마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것은 다행스럽다. 올들어 지난 27일 현재 수출은휴대폰, 자동차, 기계류의 선전으로 130억달러를 기록, 작년 동기대비 20% 증가하는등 올들어 월평균 25%대의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상승에 따라 수입이 140억달러로 32% 증가하면서 이달 경상수지도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년 12월 이후 4개월연속 경상수지 적자행진이불가피해졌다. ◆ 경제전망치 하향조정 러시 이처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다투어 올 해 경제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메릴린치증권은 지난 14일자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된데다 고유가 상황이 예상보다 우려된다며 올 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4%에서 3.5%로 0.9%포인트 하향조정했다. HSBC증권은 지난 13일 북핵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 등을 반영, 올 해 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3.4%로 낮추고 원.달러 환율 전망치도 1천290원으로 수정했다. HSBC는 재정정책 등으로 정부 부문에서 경기부양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민간부문과 기계.설비 투자감소에 따른 경기하강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은 이달초 성장률 전망치를 6.2%에서 5.7%로, ING는 5.5%에서 4.9%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국내 연구기관중 삼성경제연구소는 공식적으로 전망치를 수정하지 않았으나 지난달 내부적으로 미-이라크전쟁이 단기화할 경우 성장률은 5%대, 경상수지는 11억달러 흑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를 예상했다. 하지만 ▲전쟁이 중기화할 경우 성장률은 4%대, 경상수지는 2억5천만달러 흑자,물가상승률은 4%로 떨어지고 ▲전쟁이 장기화하면 성장률 3%미만, 경상수지 15억달러 적자, 소비자물가 4%대 후반 등으로 전망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당초 성장률 5.8%, 경상수지 7억4천만달러 적자, 소비자물가상승률 3%를 예상했으나 ▲미-이라크전쟁과 북핵문제가 상반기내 종결될 경우 성장률 4.9%, 경상수지 6억1천만달러 적자, 물가상승률 3.8% 등으로 내다봤다. 또 ▲미-이라크전쟁은 조기종결되지만 북핵문제는 지속되는 경우 성장률은 3.5%,경상수지는 24억2천만달러 흑자, 물가상승률은 4.1% ▲미-이라크전과 북핵문제가 지속될 경우 성장률은 1.4%, 경상수지는 21억9천만달러 적자, 물가상승률 5.9%로 각각예측했다. ◆ 한은도 내달 전망치 수정 한은은 다음달중 작년 12월 내놨던 성장률 5.7%, 경상수지 20억∼30억달러 흑자,소비자물가상승률 3.4%의 경제전망을 수정해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 아직 미-이라크전쟁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고 북핵문제의 불확실성도 여전하고당초 예상에 비해 경제여건이 현저하게 달라진 상황에서 더이상 과거의 전망치를 고집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존 경제전망의 전제는 미-이라크전 조기종결, 유가 배럴당 연평균 25달러(두바이산 기준), 환율 1천200원선, 미국 경제성장률 2.8%, 세계 교역증가율 6%였으나 현 상황으로만 본다면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고 말했다. 전쟁의 조기종결에 대한 기대가 위축되고 있고 유가는 이미 30달러에 다다랐으며 환율은 1천250원대로 올라섰다.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5%로 하향 조정됐다. 한은도 이에따라 성장률을 4%대 후반, 경상수지는 균형 또는 소폭 적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대 초반 등으로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당초 다음달 초 경제전망을 수정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미-이라크전쟁의 향방이 아직도 불투명해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면서 "발표 시기를내달 중.하순으로 잡고 있는 만큼 그 때까지의 전쟁 향방에 따라 전망치는 내부적으로 계속 수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