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몰려있다. 미국.이라크 전쟁과 북핵 사태, SK글로벌 분식회계, 가계부채 급증 등 안팎으로 악재가 겹치면서 내수 수출 투자 등 실물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우하향(右下向)'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이런 경기상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놓고 민.관에서 논쟁이 치열하다. 특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출신인 강봉균 민주당 의원과 김종인 한국발전기획연구소 이사장간에 '적자재정' 편성 문제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강 의원과 김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와 노태우 정부에서 각각 경제수석을 지낸 내로라 하는 경제통이다. 강 의원은 "대내외 상황이 심각한 만큼 재정 조기집행뿐 아니라 10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 이사장은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를 경기부양으로 대충 덮어서는 안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구조조정을 착실히 추진해 기본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경기진단 및 처방 중심으로 정리한다. ◆ 다른 시각, 다른 처방 현 경기상황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두 사람의 의견은 엇갈린다. 강 의원은 이라크 전쟁과 북핵사태 등 '대외변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수출과 투자, 소비심리가 한꺼번에 위축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경기위축 정도가 작년 말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가운데 선진국들도 하반기 경기를 나쁘게 보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연 3%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김 이사장은 "대외변수는 언젠가는 풀릴 문제"라며 "그보다는 SK글로벌 분식회계와 가계부채 등에서 볼 수 있듯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누적된 경제 병폐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이사장은 기업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할 시기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바람에 분식회계 등 기업의 병폐가 그대로 남았고, 가계부채만 한계 선상까지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대외변수가 악화됐음에도 내수확대 등의 정책을 쓸 수 없게 되는 등 정부의 정책 반경만 줄었다는 지적이다. ◆ '적자재정' 대 '구조조정' 강 의원은 "당장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기업도산과 이에 따른 대량 실업사태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때문에 정부가 재정 조기집행 외에 1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0조원 중 1조원은 사회간접자본(SOC), 2조원은 중소기업 지원, 7조원은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물류사업에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일본이 경기 부양을 위해 과거 10년간 1조2천억달러를 썼는데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구조조정을 미뤘기 때문"이라며 "성급하게 적자재정을 논할 때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라크전쟁과 북핵사태 등이 잘 풀리면 5% 성장도 가능한 만큼 당분간은 시장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