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기술만은 세계 최고.' 지난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해 화제에 오른 일본 교토의 시마즈제작소를 그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꼭 필요한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데 전력을 쏟아온 연구개발형 기업의 모델로도 통하고 있다. 시마즈제작소는 다나카 고이치 연구주임(43)의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기업이기도 한다. 다나카 고이치씨는 부장급 펠로우로 승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시마즈제작소의 뿌리와 전통 등을 감안할 때 노벨상 수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지난 1875년 창업후 지금까지 줄곧 '기술 최우선'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 왔다. 그 결과 첨단제품 개발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1896년에 교육용 X선 촬영장치를 시작으로 의료용 렌트겐장치, 전자현미경, 가스크로마토그라피 등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시마즈제작소가 주목받고 있는 배경이 '일본 최초'라는 기록을 잇따라 세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장의 니즈(Needs)도 중요하지만,시즈(Seeds)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핫토리 시게히코 상무의 표현처럼 연구개발의 폭과 깊이를 제한하지 않는 풍토 또한 경쟁력을 끌어올린 요소로 평가된다. "수익과는 관계가 없는 연구임에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뒤를 밀어준 회사에 대해 고마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다나카씨가 노벨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마다 늘 빼놓지 않는 표현이다. 시마즈제작소의 이같은 특성은 연구개발비 투자 실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3월 결산기 때 매출 1천9백20억엔에 18억3천5백만엔의 영업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연구개발(R&D) 투자가 무려 80억엔을 넘어섰다. 교토 기업인들이 다나카씨가 대형 전자메이커 등에서 일했다면 노벨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왜 돈이 되지 않는 연구에 쓸데없이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붓느냐"는 핀잔만 듣기 일쑤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우물만 파는 장인 정신도 빼놓을 없는 특징으로 꼽힌다. 시마즈제작소는 대량 생산에 의한 시장 선점의 생존 노하우를 중시하지 않는다. 자체 기술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다품종 소량'의 니치(Niche) 마켓을 타깃으로 삼는다. 수요가 많지않아 큰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실력을 알아주는 고객을 위해서는 어떠한 제품도 만들어 준다는 장인 정신의 표본이다. 돈의 마모 상태를 감별해 내기위해 만들어진 초정밀 계량기도 그 사례의 하나다. 수요처가 조폐국 한 곳뿐인 이 제품을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 지난 1939년에 납품했다. 시마즈는 개발된 기술과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개방주의를 지향한다. 교토의 기업, 기업인 사이에서는 첨단 기업 인큐베이터로 통한다. 반도체 장비관련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무라다제작소의 무라다 준이치 사장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탄생한 벤처 기업들중 유.무형으로 시마즈의 신세를 입지 않은 곳은 흔치 않다"고 털어놓고 있다. 시마즈와의 거래 등을 통해 기술력과 정신을 본 받으면서 이를 성장의 바탕으로 삼은 기업을 손으로 꼽을 수 없다는게 그의 고백이다. 시마즈제작소의 하청기업들로 구성된 협력회의 고바야시 쇼이치 회장은 "독자 개발한 기술이니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시마즈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특허 등으로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고 보다 폭넓게 보급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중시한 창업자의 정신이 전통으로 배어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맨 파워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형이 늘지 않는데 대해서는 나 자신도 유감입니다. 그러나 기술과 연구개발을 통한 사회 공헌을 사명으로 삼아온 창업자의 이념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야지마 히데토시 사장(68)은 "세계 경기의 악화로 영업 환경이 나빠지고 있지만 1백년 넘게 이어져온 기술 최우선의 전통과 혼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토=양승득 특파원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포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