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과천 종합청사 1동 7층에 있는 전윤철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집무실에서 8명의 재경부 1급 이상 간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왔다. 한 시간 이상 넘게 장관과 얘기를 나눈 뒤였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진표 실장의 내정설이 맞는 겁니까." 이런 질문이 서로간에 오갔다고 한다. 재경부의 고참 간부들은 행정고시 13회 출신인 김진표 국무조정실장의 경제부총리 내정이 기정 사실화되자 자신들의 거취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행시 4회(66년 임용) 출신인 전윤철 부총리보다 8년 후배(74년 임용)인 김 실장이 후임으로 올 경우 12회부터 17회까지 포진해 있는 1급 이상 간부들중 상당수가 일선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경부 간부들은 이날 하루종일 일손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같은 모습은 비단 재경부뿐 만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후 조각(組閣)작업이 늦어지면서 일시적인 '행정공백' 상태가 각 부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장관들은 장관들대로 지난주 말부터 사실상 임기가 끝났다는 판단 아래 주요 결재를 후임 장관에 미뤄 놓고 있다. 일선 공무원들도 일손을 놓고 하루종일 '삼삼오오' 모여 후임장관 인선과 이후 인사방향을 논의하느라 뒤숭숭한 모습이다. ◆ 장관은 있지만 결재는 안된다 김석수 국무총리는 26일 법률상으론 임기가 계속됐지만 이날 중앙청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서울 도곡동 자택에 머물며 '재택근무'를 했다. "사실상 할 일이 끝났다"는 판단에서였다. 때문에 총리실 의전팀은 김 총리 자택에 파견돼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등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재경부 등 각 부처도 주요 결재를 새 장관 취임 이후로 미루는 등 사실상 행정공백 상태에 빠졌다. 전 부총리는 26일 5일만에 처음으로 출근해 이날 1급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 '오리무중' 인사, 뒤숭숭한 부처 재정경제부와 법무부 농림부 등 5∼6개 부처를 빼고는 막판까지 장관 인선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어 각 부처는 더욱 일손을 못잡는 모습이다. 수석 경제부처인 재경부 조차 지난 24일 이후에야 김진표 국무조정실장 내정설이 흘러나왔을 정도. 때문에 재경부측은 김 실장과 함께 장승우 기획예산처 장관, 강봉균 의원(민주당) 등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인사들에 대해서까지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라는 직함을 달아 명함을 찍어두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산업자원부는 장관인선의 가닥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고 있다. 막판 경합을 계속하고 있는 오영교 KOTRA 사장과 최홍건 산업기술대 총장 등 2명 모두 전직 차관 출신이지만, 성향이 달라 누가 장관으로 오느냐에 따라 근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과학기술부는 홍창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장과 황우석 서울대 교수로 후보군이 좁혀져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건설교통부는 최초로 내부 승진 장관(추병직 현 차관)이 나올 것인지, 첫 여성 장관(김명자 환경부 장관)이 올지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조각에서는 '형식파괴'가 주요 테마인 것 같다"며 "40∼50대 젊은 외부 인사들의 기용을 주로 하는 파격인사가 계속되고 있어 후속 간부진 인사의 감을 잡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