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정(司正) 속도조절'을 강조한데 대해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재계가 새 정부의 지속적인 개혁방침에 대해서는 지지하면서도 개혁활동이 무리하게 진행돼 투자나 신규사업 등 본연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검찰 수사가 SK에 이어 한화로 확산되려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의미를 갖는 것으로 재계는 평가하고 있다. 혹시라도 검찰 수사가 재계 전반으로 강도 높게 확산될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작용이 심각할 것으로 우려돼 왔기 때문이다. 재계는 노 대통령이 "몰아치기식 수사는 곤란하다"고 밝힌데 이어 이날 "사정활동의 속도조절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한 것은 '경제는 안정감 있게 끌고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인신구속의 경우는 국민감정 해소 차원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재계를 희생양으로 삼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는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원칙과 신뢰'를 국정운영의 좌표로 삼겠다"면서 '원칙론'을 밝힌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마다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해 '알아서 행동하는' 관행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계는 그러나 정권 교체기의 소나기식 수사는 일단 없어진다 하더라도 앞으로 새 정부의 기업개혁 정책은 변함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고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을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대로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평소 원칙론을 밝힌 것이라 하더라도 최근 기업들이 느꼈던 불필요한 불안감을 잠재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며 "이제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전념하면서 정부의 '동북아 구상'에 적극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