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근린(近隣)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양국민이 서로 증오하는 경향이 있는 소원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지도자였으나 한-일관계는 기대했던 만큼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지난해의 월드컵 공동개최 효과 역시 당초 예상에 못미쳤다. 25일 취임한 노무현(盧武鉉)대통령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이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양국관계가 한결 나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FTA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국에서 모두 저항을 받게 되겠지만 두나라의 경제통합으로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나라간에 FTA가 체결되면 1억7천만명의 소비자를 포용하는 거대시장을 형성하고 통합 국내총생산(GDP)이 5조달러에 이르게 된다. 양국은 작년 7월 민관 공동연구회를 구성한 이후 지금까지 4차례 회의를 갖고 FTA 체결가능성을 협의했다. 공동연구회는 당초 내년 여름까지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양국간 공식협상이 가급적 빨리 시작되도록 보고서 제출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있다. 중국경제의 급성장이 두나라에 갈수록 뚜렷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나라가 경제적으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FTA체결에 험로가 예상된다. 다이와 증권 서울지점의 선임 애널리스트 이오키베 지로는 두나라가 최대의 라이벌인 만큼 공동시장 창설을 위한 `룰'을 설정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FTA협상에 착수하면 상대방 상품에 대한 수입관세 철폐여부가 당장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에게는 한국산 농.수산물에 대한 고율의 수입관세, 한국 입장에서는 일제부품 및 공산품에 물리는 수입관세 철폐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의 한국산 농.수산물 수입규모가 전체 대한(對韓)수입의 10% 가량을 점유하고 있고 또 한국이 일제 공산품 등에 대한 수입관세를 철폐할 경우 현재 연간 1조1천억엔에 이르는 대일(對日)역조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FTA 민관 공동연구회의 일원인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김양희연구원(여)은 한국보다는 일본에 FTA가 더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한국정부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국민들을 상대로 FTA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FTA가 체결될 경우 단기적으로 손해만 볼 뿐 가시적인 메리트를 기대할수 없다는 점이 한국의 걱정"이라며 지도자들로서는 국민의 용기를 북돋워 "그렇게합시다"라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애물들이 많긴 하지만 쌍무 FTA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중국과 동남아국가들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통합을 공동추진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두나라에모두 이로울 것으로 믿어진다. 일본무역진흥회 서울 사무소장 나카자와 노리오는 "일본과 한국은 둘다 폐쇄된사회인 만큼 쌍무 FTA는 각자 필요한 국내구조개혁을 가속화함으로써 윈-윈 게임이나 `포지티브-섬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아울러 과거의 어두운 관계가개선될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IEP의 김 연구원은 양국정부가 쌍무 FTA를 "전략적 관점에서" 봐야 하며 동아시아의 확대통합을 촉진시켜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블록에 대항할수 있는 협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박정동 연구원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지역통합과정이 진전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과 일본,중국 세나라의 통합방안 모색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세나라는 FTA 체결문제와는 별개로 동북아공동체 창설 가능성 타진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나라가 전쟁과 상호비난으로 얼룩진 20세기를 뒤로 하고 새로운 단계로접어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협력관계에서 더 나아가려 애써야 하며 장애물들을 어떻게 제거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교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