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가 출발부터 경제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북한의 핵개발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물가 실업률 내수소비 등 각종 경기지표들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지시에 따라 경제동향 점검 관리팀을 구성, 23일 첫 회의를 갖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당장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태원 SK(주) 회장 구속,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증여세 부과 '타당' 판정 등이 재계에 대한 '새 정부의 공세'로 해석될 경우 기업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경기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 대외여건 급속히 악화 세계적인 전쟁 반대 여론에도 불구, 미국은 이라크를 독자 공격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정부는 배럴당 30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무역수지가 8천7백만달러 적자로 돌아선 주요인이 고(高)유가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충격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반도체 가격(2백56메가D램 기준)이 지난해 말 대비 60% 이상 폭락하는 등 주력 수출품의 교역조건은 악화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시장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수출여건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내수경기 지표는 최악 지난해 말까지 상대적으로 탄탄했던 실물 경기가 최근 들어 소비 급랭 속에 뚜렷한 하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도시근로자 가계지출은 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난 1월중 소비자평가지수는 79.6으로 15개월 만에 가장 낮아 내수소비 위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실업률은 3.5%로 10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 물가도 전달에 비해 0.6% 올랐고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3.8%에 이른다.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를 염려하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 '올해 5% 성장도 쉽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Positiv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낮췄다. 북핵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오는 4월께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경제전문기관들의 시각도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6%에서 5.0%로 낮췄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도 성장 전망치를 5.4%에서 4.6%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는 올해 1.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4.4분기보다 1%포인트 이상 낮아진 4%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올해 초 발표했던 '5%대 성장'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