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경기상업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3층 시청각실로 모여들었다. 이날은 '제1회 창업아이디어 공모전' 최종일. 지난 한달동안 창업 아이디어를 구상해온 학생들이 회사설립 방안, 제품 샘플, 마케팅 전략 등 사업계획을 프리젠테이션하는 자리다. 'AD게임즈'라는 회사를 세우겠다는 최종호군(1학년)이 먼저 나섰다. "인터넷 광고의 대부분은 배너광고죠. 하지만 대부분 제품만을 너무 강조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배너광고와 게임을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즉석에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연해 보인다. "여기 삼성전자의 배너광고를 보세요. 배너광고 위에 커서를 올려놓으면… 이렇게 곧바로 벽돌깨기 게임이 시작되지요." 벽돌깨기 게임이 시작되면서 최 군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게임이 끝나자 화면은 어느새 삼성전자 홈페이지로 넘어가 버렸다. 처음에는 갸우뚱하던 참석자들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당장 실용화해도 시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 군에 이은 프리젠테이션도 만만치 않았다.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휴대폰 튜닝(휴대폰 외형을 특색 있게 바꾸는 것)' 전문업체가 저희 회사 아이템이에요. 인터넷을 활용할거예요."(송아영 송재석.1학년·리모델링 셀폰 대표) "비싼 옷이나 신발을 싼 가격에 빌릴 수 있는 의류.신발 대여점으로 10대층을 공략할 겁니다."(이상은.1학년.더 필 대표) "휴대폰으로 집에 있는 컴퓨터를 원격제어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언제 어디서나 회사업무가 가능해지겠죠."(임형준.1학년.스탠다드소프트 대표) 이날 발표된 사업계획은 9가지.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고급지식이 필요한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내용이 발표됐다. 이날 공모전은 이 학교가 지난해 '청소년 비즈쿨(Bizcool)' 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마련된 행사다. '비즈쿨'은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중소기업청이 공동추진하고 있는 경제교육 프로그램. 교과서만으로 진행되던 딱딱한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은 물론 창업에도 직접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시범학교도 지난해 16개교에 이어 올해는 50개교로 대폭 늘어났다. 비즈쿨의 특징은 경제현장의 내용을 기초로 한다는 것. 교육 내용이 생생한 사례 중심으로 꾸며진다. 특히 각 시범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창업동아리는 현장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동안 겉돌았던 실업계 교육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학생들도 창업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다. 경기상고 창업반 황주희 양(2학년)은 "비즈쿨은 '교육을 받는다'는 느낌보다 '사업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진진하다"며 "주위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소한 것도 이제는 사업 아이템으로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공모전에서 대상과 금상을 받은 이상은 군과 최종호 군도 창업반 학생들. 이들은 내달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창업선도동아리 지원사업'에 제출할 사업계획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학교 비즈쿨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박진형 교사는 "처음 30명으로 창업반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학생들이 과연 비즈쿨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며 "지금은 아이들 능력이 교사 능력을 넘어설 만큼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비즈쿨을 응용한 독특한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일산정보산업고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 1학년 학생들은 지난해 9월 '주식회사 일산'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학생들이 학교 매점을 한달간 직접 운영하며 주식회사의 체계를 배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회사 설립부터 주식 발행까지 실제 주식회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경영한다. 11명의 학생들이 최고경영자(CEO), 재무담당이사(CFO), 마케팅이사(CMO), 판매사원을 맡아 회사를 꾸려나갔다. 일산정보산업고의 비즈쿨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설봉주 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매점을 운영하면서 시장경제 원리까지 깨닫게 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며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하며 배우는 비즈쿨이 교육계 전반으로 확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