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최근 의회증언에서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을 정면비판하고 나서 그의 추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감세안에 대한 그린스펀 의장의 예리한 비판은 경제적 견해가 모호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던 그가 `하려고만 하면 분명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미 CBS방송 인터넷판이 17일 지적했다. 그가 2차 감세안에 세수보전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자 민주당쪽에서는 그가 1조3천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죽음의 키스"를 보낸 것이라고 반겼다. 반면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그가 자신도 공화당원이면서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분개했다. 백악관은 그린스펀이 감세안의 핵심인 주식배당세 폐지안을 수용했다며 그의 비판발언에 따른 후유증 최소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의 감세안 비판은 그가 15년 이상 봉직해오면서 정치적 `지뢰밭'을 현명하게 피해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건'이라고 민간경제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시카고 `노던 트러스트'의 수석연구원 폴 캐스리얼은 "그린스펀이 내년 차기 FRB 의장 재지명을 바라지 않거나 재지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백악관에서는 전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백악관 보좌관들은 그린스펀의 감세안 비판발언이 FRB와 부시 대통령간의 심각한 불화를 표출시킨 것이라는 추측을 일축했다. 클레어 부챈 백악관 대변인(여)은 "그의 임기는 내년 중반에야 끝난다. 따라서 그런 추측은 우습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의 2차 감세안 비판은 재작년 의회를 통과한 10년간 1조3천500억달러 규모의 1차 감세안에 보여준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그는 1차 감세안을 지지, 그해 취임한 부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었다. 향후 10년간의 세계잉여금이 5조6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의회로서도 감세를 수용할 여유가 있다는 게 그의 찬성 이유였다. 여기에는 감세를 하더라도 그가 우선시해온 `국가부채 감축'목표 달성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논리도 작용했다.그러나 `잉여금'의 꿈은 경기침체와 반테러전 및 감세 때문에 사라졌다. 지난주 그린스펀의 의회증언은 `2차 감세안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 자체보다는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비판수위를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린스펀은 추가 감세에는 반드시 정부지출감축이나 증세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부시가 제시한 이번 감세안에 그런 내용은 들어 있지않다. 그린스펀은 '미 경제는 지금 또 한차례의 정부 부양이 필요하다'는 감세안의 논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일단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불활실성이 걷히면 추가 감세조치 없이도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리라는 게 그린스펀의 주장이다. 즉 그는 "재정적자는 문제가 안된다"는 부시 행정부의 사고방식과 경제성장이 감세로 축난 재정수입을 능히 보전해줄 것이라는 주장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이는 그가 2001년 1차 감세안을 지지함으로써 재정적자 문제에 대해 잃었던 신뢰를 회복코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있다. 또 FRB 의장 재지명 여부와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그가 항상 해온 바를 하고 있고 그가 본대로 말하고 있을 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는 90년대의 장기호황을 거치면서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와 "천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99년과 2000년에는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오늘날의 경기하강을 유발했다는 비판도 들었다. 1991년과 1992년의 통화긴축정책이 침체를 심화시켜 결국 `아버지' 부시의 재선실패로 이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들을 만큼 `부시 가문'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그의 현 임기는 내년 6월 20일 만료된다. 부시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선거운동이본격화되기 전 상원 인준을 받을 수 있도록 내년초에 서둘러 후임자를 지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가지 문제는 지난 1987년 당시에는 월가에서 그린스펀이 폴 볼커의 적합한 후임자라는 데 이견이 없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 출신으로레이건 행정부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이나 재무차관을 역임한 피터 피셔 등이 후임 후보군에 올라있으나 선두주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그린스펀의 FRB'에 관한 책을 네권이나 쓴 데이비드 존스는 다음달에 만 77세가 되는 그린스펀이 건강을 유지하는 한 오는 2006년 1월31일까지는 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은 바로 그의 FRB 이사직 14년 임기가 끝나는 때다. 현행법으로는 그의 FRB 이사 재선이 불가능하다. 존스는 "부시 행정부는 지금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고 내년에는 부시의 재선가도를 위한 채비에 들어갈 것"이라며 "그린스펀은 현 임기를 다 채운 후 차기 대통령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맞출 수 있도록 1∼2년 더 자리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