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축복받았다 해서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남들을 다르게 대할 권리가 주어진 것은 아니란다. 풍요로움은 남들보다 세상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의무이자 특혜이지."


미국 5백대 갑부안에 드는 마이크 놀즈씨(54.가명)와 헬렌 놀즈씨(51.가명) 부부가 네 자녀에게 가장 많이 들려주는 이야기다.(그들은 '무대 위에서 조명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가명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자가 된 뒤 기사에 가명을 쓰겠다고 서약서에 사인하기는 처음이다.)


항공 및 금융기업을 경영하는 마이크는 지난해 경영전문잡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 5백대 부자'에 꼽힌 억만장자.


"적당한 계기가 오면 풍족한 만큼 그것을 나누고 베푸는 특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요."(헬렌)


몇 개월 전 막내딸 제니를 위한 '때'가 왔다.


아빠에게 1백만달러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던 것.


학교 친구들이 아빠가 백만장자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마이크는 지갑을 열어 돈을 세어보곤 말했다.


"글쎄... 1백20달러가 전부인 걸. 친구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주렴."


고개를 갸웃거리던 딸은 며칠 후 또다시 물어왔다.


"아빠가 우리 학교 애들 엄마 아빠 중에 돈이 제일 많아요?"


부부는 언니 오빠에게 그러했듯 제니를 무릎에 앉혀놓고 말했다.


"맞아. 우리 가족은 물질적으로 큰 축복을 받았단다. 아빠는 열아홉살 때부터 좋아하는 일로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 운도 좋았지만 열심히 일했고 주변 사람들도 많이 도와줘 성공했단다. 그래서 돈이 많단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책임이 뒤따르는 거야."


놀즈 부부는 이미 여러가지 자선사업과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자녀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켰다.


둘째딸 로라는 현재 YWCA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밤에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제니도 엄마가 봉사활동에 나설 때면 반드시 따라나선다.


'노동의 신성함'도 이들이 강조하는 덕목이다.


"잘사는 만큼 아이들에게 '일'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부모의 성공이 자칫 아이들 스스로 노력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으니까요."(마이크)


"가족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우리의 철학에 동참해 주길 바라고 있지요. 1700년대 벤저민 프랭클린이 2만달러를 들여 만든 재단은 지금도 많은 부문에 기여하고 있지 않습니까."(헬렌)


놀즈 가족의 경우처럼 미국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가족재단(Family Foundation)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도 2만1천여개의 가족재단이 탄생해 학교 도서관 병원을 후원하는 일에 동참했다.


그렇다고 '나눔의 아름다움'이 놀즈 가족과 같은 '특권층'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누구든 기부와 봉사활동이 생활화돼 있다.


캘리포니아 남부 샌타클래라에 있는 세인트 조셉 쿠퍼티노 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이 음식 바구니를 직접 만들어 독거 노인들에게 돌리도록 했다.


매일 아침 자신이 좋아하는 시리얼을 가져와 큰 바구니에 넣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 유치원의 에란 이뎀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오로지 '자신'만이 관심의 대상이지요. 이런 작업들을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깨닫게 합니다. 유년시절의 체험이 그들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원봉사를 '생활'로 여기게 된다.


샌타모니카 웨스트우드에 있는 말일성도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거의 매일 저녁 인근 중.고교생들이 모여 선물바구니를 만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주변에서 혼자 쓸쓸하게 보내는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한 자원봉사다.


"엄마와 함께 주말마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음식봉사 활동에도 나갑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언제나 보람있는 일이예요."


이곳에서 만난 에리카 헤르나니(18.컬버시티고등학교 3년)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샌타모니카.샌타클래라=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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