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팀 = 베네수엘라 석유노조 파업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중동지역에 전운이 짙어지면서 정부와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8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유가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산업자원부 장관이 10일부터 원유의 원활한 수급을 보장받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산유국 방문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배럴당 유가가 연평균 1달러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가 0.15%포인트 오르고무역수지가 7억5천만달러 악화되는가 하면 경제성장률도 0.10%포인트 떨어질 정도로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고 보고 적기대응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정유 및 항공업계를 중심으로 한 산업계도 원유 도입선을 재점검하고 위기상황시 대체 도입선을 강구하는 동시에 비축분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제유가 어디까지 올랐나 = 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들어 유가는 지난주말을 전후해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배럴당 33달러대, 브렌트유는 32달러대, 두바이유는 27달러대까지 올라 거의 2년만에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작년 1월초 두바이유가 18-19달러였던 만큼 10달러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지난달 2일 시작된 베네수엘라 석유노조 파업이 한달이 지났는데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전이 1월말 개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베네수엘라 파업과 미-이라크전이 겹칠 경우 엄청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두바이유 기준으로 35-4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이 경우 세계 석유공급에서 전체의 6-7%에 해당하는 하루 450만-500만배럴의 차질이 발생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대체생산능력은 340만배럴에 불과해추가적인 가격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다만 최근 OPEC가 증산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면서 강세장이 잠시 주춤한 것은 다행스러운 움직임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측이 하루 200만배럴 증산을 제안한 것으로알려졌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감안할 때 100만-150만배럴 증산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라면서 "12일을 전후해 결정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3단계 대책 준비= 정부의 위기대응 계획에 따르면 두바이유 기준으로 30달러 이상 일시급등한 뒤 정상화될 경우 시장에서 인상요인을 흡수하고 소비절약을강화하는게 1단계 대책이다. 그러나 35달러를 넘는 고유가상황에 수급차질이 예상될 경우 2단계에 돌입, 비축유를 풀고 네온사인과 전광판, 체육시설, 유흥사치업소 등에 대한 절전고시를 시행하는 한편 관세와 특소세 등 인하와 수입부과금 징수유예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다. 특히 전쟁이 장기화되고 심각한 수급차질이 발생하면 3단계 대책을 발동, 유가완충준비금을 활용한 최고가격고시제 시행이나 수급조정명령 발동을 검토하게 된다고 산자부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 현재 비축유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정부 48일분, 민간 53일분 등 101일분(1억4천750만배럴)을 보유중이며 유가완충자금은 배럴당 5달러씩 보전해줄 경우 34일간 쓸 수 있는 금액인 4천617억원이 있다. ◆업계도 물량확보 대책 비상= 국내 정유사들은 이라크전 발발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면서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등 원유 수급대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베네수엘라 파업 등의 영향으로 유가가 급등, 한달 뒤에 반영되는국내 소비자가도 ℓ당 20원 안팎씩 높아졌지만 최근 OPEC의 증산논의로 다시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라크전이 발발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 중동 주요 산유국과의 오랜 유대관계를 활용해 유사시에도 도입물량 차질이 최소화되도록 물량 우선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전쟁이 일어나도 원유수송로 자체가 봉쇄되는 것은 아닌 만큼 수급 자체에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 유전파괴와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나이지리아나 앙골라,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 대체원유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아울러 본사와 휴스턴, 런던, 두바이, 싱가포르 등 주요지점의 지사를 통해 시장 동향을 24시간 모니터링,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한편 유가가 급등할 경우 상승분을 국내 가격에 적기에 반영, 합리적 소비를 유도할 계획이다. 정유사들은 미국과 이라크간에 현격한 군사력 차이가 있는 만큼 전쟁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지만, 만일 전쟁이 장기화될 때는 다양한 대비책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했다. 유가변동에 특히 민감한 항공업계도 최근 유가상황이 경영수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항공사들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올라갈 경우 연간 300억원 정도 추가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전이 발발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는 판단 아래 비축분 최대확보와 헤지(위험회피) 등의 대책을 마련중이다. 대한항공[03490]의 경우 연간 항공유 소비량 9억갤런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3억갤런을 정유사와의 계약을 통해 유가변동이 있더라도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받기로했고 아시아나항공[20560]도 같은 방식으로 1.4분기 도입분에 대한 헤지 대책을 마련한 상태다. 대한항공은 특히 인천공항 인근 항공유 탱크에 12일분 정도인 36만배럴을 비축분으로 보유중이며 향후 1개월분 정도로 비축분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