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원리 접목해야 ] 세계적으로 연금제도 개혁 문제가 핫 이슈가 되고 있다. 인구 노령화에 따라 노인세대 부양 부담이 증가하고 있어 기존의 공적연금제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연금개혁 논의에서는 가장 일찍 연금개혁을 실행한 중남미 국가들의 사례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과거의 방만한 연금제도 때문에 재정적자가 누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80년대와 90년대 급진적인 연금제도 개혁을 실행했다. 개혁의 세부적인 내용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확정급여 방식에서 확정기여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다. 즉 연금급여로 얼마를 받게 해 줄 것인가를 더 이상 정부가 약속하지 않고 단지 기여금(또는 보험료)만 정해 놓은 것이다. 확정급여 방식을 택할 경우 인구 노령화에 따라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 재원이 모자라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실제 중남미 국가들에선 이를 재정적자로 보전한 정책이 인플레이션 등 경제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되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제도를 개혁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확정급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30년 이후 기금이 급격히 감소해 2050년 이전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 둘째는 부과 방식에서 적립 방식으로 이행한 것이다. 부과방식이란 현재 근로세대로부터 세금을 거둬 이 돈을 바로 노인세대 급여로 쓰는 것이고 적립방식이란 연금가입자가 낸 돈을 적립해 조성된 기금으로 은퇴 후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부과 방식보다는 적립 방식이 시장원리에 더 가깝다. 또 적립 방식을 따를 경우 연금기금이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에 투자되므로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는 적립 방식에 부과 방식을 접목한 부분적립 방식으로 돼 있다. 이 점에서는 개혁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연금기금을 정부 또는 그 산하기관이 아니라 민간회사가 맡아 운용하도록 했다. 흔히 이 점을 중시해 '민영화'를 중남미 연금제도 개혁의 핵심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가입이 의무화돼 있고 연금 기여율도 정책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공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단지 기금의 운용만 민영화됐을 뿐이다. 민영화는 기금 운용의 정치적 왜곡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가입자 유치 경쟁에 따른 마케팅 비용 등 제반 관리비용이 증가하는 폐단도 나타났다. 중남미의 경험은 기금 운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민영화를 실행하려면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배울 수 있다. 공적연금제도는 민간보험에서 나타나는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따라서 공적인 성격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장원리를 적절하게 가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 개혁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석진 < LG경제硏 연구위원 sjkim@lge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