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로 접근해야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통치의 큰 축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그가 시행한 몇몇 정책들은 '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 규제다.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와 출자총액 제한 제도,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제한,사외이사 의무화,상호지급보증 금지 등 현 정부들어 찬반(贊反)논란이 많은 규제조치가 도입됐거나 부활됐다. 이같은 'DJ노믹스'의 모순에 대해 전문가들간에도 입장이 엇갈렸다. 김용열 산업연구원 기업정책실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규율(規律)과 규제(規制)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정책당국자들은 시장의 규율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까지도 규제로 풀려는 경향이 있다"며 "기회의 균등이 시장경제의 대전제인만큼 가급적 규제는 최대한 풀고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장경쟁원칙 제대로 작동돼야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는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였고 정경유착과 부패의 고리로 이어졌다. 그 결과 기업들은 '시장'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더 봐야 했다. 대기업그룹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부정적 이미지인 '재벌'로 굳어지고 '재벌개혁'이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송병락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재벌이 바람직한 기업 형태인지,아니면 다른 형태가 더 좋은지는 정답이 없다"며 "그 결과물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나 자동차 선박 등을 생산할 수 있다면 기업의 조직형태를 문제삼아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공공과 교육 부문에서도 시장경쟁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민간부문에서 훌륭한 경험을 쌓았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사가 되는 길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최근 발표한 국제경쟁력 부문에서 '정부 효율성'이 조사대상 49개국 가운데 25위,교육 경쟁력이 44위에 머문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시장경쟁의 제도는 갖췄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1998년 노동법 개정으로 정리해고 제도가 명문화됐지만 실제 정리해고가 이뤄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신 목돈을 따로 지급해야 하는 명예퇴직이 일반화돼 있다. 이처럼 고용조정이 까다롭다보니 기업들은 1년이상 고용하는 상용근로자를 기피하고 일용직과 임시직(1개월 이상 12개월 미만 고용)을 늘렸다. 그 결과 상용근로자 수(올해 3·4분기 기준)는 6백62만명으로 5년전에 비해 7.4% 감소한 반면 일용·임시직은 이 기간중 18.5% 증가했다.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정리해고에 반대한 노동계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지위 불안'을 초래한 셈이다. 시장의 원칙을 무시한 힘의 논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선입견 가져서는 안돼 물론 시장경제의 원칙을 현실적으로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예컨대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고용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제한적으로 해고를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시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가 미리 그려놓은 청사진을 갖고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게임(자유경쟁)의 규칙을 정하는 수준을 넘어 미리 그려놓은 그림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권혁철 자유기업원 정책분석실장)이라는 얘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