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출범할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큰 관심사다. 노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공약을 통해 밝힌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의 큰 틀을 거듭 확인했다. 거시정책 운용에 대해서는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겠다"고 구체적 입장을 유보하면서도 "경제 안정을 위해 물가와 부동산값은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이날의 회견과 그간의 선거 유세 내용 등을 바탕으로 "노무현 경제정책"을 기업 거시 금융 통상 노동 등 분야별 시리즈로 짚어본다. 노 당선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과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기업정책의 두 가지 큰 갈래로 제시했다. 각종 인·허가 규제와 준조세 등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제도는 전면 손질하되 대기업그룹의 상호출자·채무보증 관행 등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기업 경영활동과 관련된 규제는 적극 개선해 나가되 기업 소유구조와 관련한 개혁은 강화,'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기업정책을 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 당선자의 이같은 입장은 "재벌은 재벌이고 대기업은 대기업"이라며 "대기업의 왕성한 경제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데서도 확인된다. 그는 "(재벌개혁에 대한) 본뜻이 왜곡되고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다"며 새 정부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했다. ◆기업관 왜곡된 기업지배구조와 선단식 경영,편법 상속·증여를 통한 부당한 부(富)의 세습 관행은 '기업 보호'를 위해서도 차단해나가겠다는 게 노 당선자가 강조하는 '재벌 개혁'의 요체다. 그는 20일 기자회견에서도 "재벌의 불합리한 경제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경제에 부담이 되고 효율성이 떨어져 경제위기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개혁'이 궁극적으로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정비' 차원에서 추진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는 "(기업 개혁을)경제에 부담이 안가도록 잡아나가겠다"고도 해 시장과 경제에 충격을 주는 급진적인 조치는 없을 것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소유구조 개혁에 초점 기업 경제력 집중 및 사업 확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키로 했다. 기업들이 반대해 온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역시 '허위공시·부실회계·주가조작 등 증권시장의 불법 행위 근절'을 이유로 조기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대기업 계열사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도 추진키로 했다. 특히 기업 소유구조의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상속세와 증여세에 대한 사실상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 불법?변칙적인 부의 세습을 차단키로 했다. ◆경영활동 규제는 완화 노 당선자는 그러나 인·허가 등 기업 관련 규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준조세를 대폭 정비해 '관치(官治)'로 인한 기업들의 부담은 적극 덜어줄 것임을 강조했다. 중소·벤처기업 지원체제 개선도 기업활동 활성화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현행 12%인 중소기업의 법인 최저한세율을 낮춰 세금 부담을 경감해주는 한편 기술·인력·자금·판로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지원체제를 혁신한다는 구상이다. ◆공정위 기능은 되레 강화 노 당선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들의 시장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사례가 많다며 기능 축소와 역할 재조정을 요구해온 재계 입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공정위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공약을 통해 "공정위의 중립성과 권한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부당 공동행위를 근절하고 부당 내부거래를 엄단하기 위해 공정위에 사법경찰권을 한시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그의 공약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가격 및 입찰 담합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공정위의 일부 권한은 약화시키는 대신 독과점(카르텔)과 독점 행위에 대한 감시 기능은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