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들이 올들어 막대한 수익을 내고도 2년째 투자를 기피해 쌓아둔 현금자산이 50조원에 이른다. 남는 돈으로 빚을 갚아 평균 부채비율은 사상 최저인 1백30%로 떨어졌다. 반면 수익성면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1∼9월중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올해 기업경기는 이같은 특징으로 요약된다. 그동안 원유.원자재 값과 금리 환율이 모두 하락함에 따라 대부분 업종에서 '3저(低)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3.4분기 이후 수익성 악화조짐이 뚜렷해 기업들은 당분간 내실경영, 감량경영으로 더 움츠러들 전망이다. ◆ 불확실할 땐 '내실'이 최고 조사 대상 1천70개 상장 제조업체들(코스닥 및 금감위 등록법인 포함)들의 보유 현금자산은 50조2천억원으로 올들어서만 8조원이 늘었다. 매출채권까지 합치면 당좌자산이 99조8천억원에 이른다. 현금으로 바꿔쓸 수 있는 자산이 사상 최대인 1백조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처럼 사상 최대의 현찰을 보유하게 된 것은 경기호전으로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안팎 여건이 불확실해 투자를 망설인 결과다. 대신 외환위기 직후 발행했던 고금리 회사채 등 장기 부채를 대거 상환,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1백85.7%에서 1백30.1%로 하락했다. 여기엔 대우자동차의 채무면제익(17조6천억원) 등에 따른 부채비율 하락효과(25.6%포인트)도 포함돼 있다. ◆ 빈익빈 부익부 대부분 업종에서 수익성 개선 징후가 뚜렷한 반면 한계기업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1천원을 팔아 1백원 이상 번 업체 비중이 지난해 23.8%에서 올해 25.3%로 늘어난 반면 1백원 이상 손해를 본 업체도 13.5%에서 16.5%로 늘었다. 또 영업해서 번 돈(영업이익)으로 차입금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비율 1백% 미만 업체 비중도 34.3%(전년 동기 32.3%)로 되레 높아졌다. 한은은 전반적으로 수익성이나 재무구조가 개선됐지만 코스닥 등록업체 가운데 적자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3.4분기 부진 뚜렷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이 상반기 8.8%에서 3.4분기(7∼9월) 석 달을 더한 1∼9월엔 7.6%로 둔화됐다. 하반기 들어 각종 체감경기 악화가 실제 기업의 성적표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조성종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까지는 기업 재무제표가 누적 기준으로만 보고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3.4분기 수익성이 둔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부터는 매 분기 기준으로 기업경영 분석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