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자존심인 피아트자동차가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심각한 적자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나 "노(근로자).정(정부)"에 발목이 잡혀 진척을 못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가브리엘 갈라테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일 사임을 발표한데 이어 공동 CEO인 파울로 프레스코 회장도 곧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피아트의 구조조정을 놓고 이해 관계자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본사가 있는 토리노는 혼돈에 싸여있다"고 전했다. ◆발목잡는 노·정=회사측은 지난 5월 2만9천명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등 10만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사측이 근로자들을 '실적 부진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며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과격 대응하고 있다. 회사가 기운 직접적인 원인은 농기계사업과 전기회사 인수의 실패 때문이라는 게 노조측의 주장이다. 실비오 베룰루스코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도 구조조정에 비협조적이다. 감원 확대에 동의하면서도 '해고 직원의 1년 후 복직'과 '시칠리아 소재 테르미니 이메레세 공장폐쇄 계획의 철회'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지지 기반인 시칠리아의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제안이었다. 3대 주주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의 인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면돌파하는 소유주=피아트 지분의 80%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IFIL의 움베르토 아그넬리 회장은 두 명의 CEO를 교체하는 초강수로 맞서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한데도 현재의 경영진은 리더십과 대외협상력이 부족해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그넬리 회장은 후임 회장 겸 CEO에 자신의 심복이자 금융통인 지안뤼기 가베티 부회장을,또다른 CEO에 엔리코 본디 전 텔레폰이탈리아 CEO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보도다. 특히 엔리코 본디의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피아트의 주채권은행인 메디오방카 출신으로 20여년동안 문제 기업을 회생시키는 구조조정 업무를 해왔기 때문이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