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절반의 성공'으로 요약된다. 외형적으로는 공무원 수를 90년대 초 수준으로 줄였고, KT 포스코 한국중공업 등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라는 해묵은 과제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러나 내용을 따지고 들어가면 외형적 성과에 걸맞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작은 정부'라는 구호와는 달리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옥상옥(屋上屋)의 '위원회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었고, 가계대출과 부동산 등 핵심 경제현안에 대해 유.무형의 행정 간섭을 노골화하면서 되레 '관치(官治)경제로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 정부조직 개혁, 그리고 후퇴 현 정부는 지난 9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98년 2월 부총리제와 공보처를 폐지하고 내무부와 총무처를 행정자치부로 통합하는 등 17부 2처 16청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1년여 만인 99년 5월 공보처가 국정홍보처로 부활하고 문화재청, 중앙인사위원회, 기획예산처가 신설되면서 국무위원 수는 17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났다. 이어 2000년 말에는 경제부총리 및 교육부총리가 신설되고 여성특별위원회가 여성부로 승격하는 등 '작은 정부'의 구호를 슬그머니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공무원 수도 마찬가지다. 97년 93만5천명을 정점으로 지난해 말 86만8천명까지 줄었지만 정권 말기를 틈타 각 부처가 정원을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올해 6월 말 현재 정원은 88만2천명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 '위원회 공화국' 이번 정부가 양산해낸 또 다른 조직으로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빼놓을 수 없다. 제2건국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이 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제2건국'을 담당할 주체였다. 정부 각 부처에 산하조직을 거느리고 '신지식인 운동' 등을 벌여나가 국가를 개조해보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매년 2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위원회는 출범 4년 만에 김대중 정부와 함께 국민들에게 잊혀진 조직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제2건국위 몰락은 권한의 이양과 정부 축소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은 조직의 운명을 보여주는 증표랄 수 있다. 이밖에도 노사정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 현 정부 들어 신설된 기구들은 '민·관 협의를 통한 행정효율 제고'라는 출범 취지와 달리 주5일 근무, 부실기업 매각 등 주요 현안을 놓고 민.관 이견 조율은커녕 갈등을 증폭시킨 경우가 적지 않아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이 점증하면서 각종 정부위원회는 98년 3백72개에서 2002년 3백63개로 9개가 줄었지만 '명패만 내건' 위원회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관치 경제로 후퇴 작은 정부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시장을 통한 경제문제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크고 작은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직접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정권 초기엔 경기부양을 겨냥, 부동산 구입자들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조치를 발표하더니 올들어 부동산경기가 과열양상을 보이자 세제혜택 축소는 물론 강력한 세무조사라는 방식으로 '관제(官製) 처방'을 내놓았다. 가계부채가 급증세를 보이자 은행들에 주택담보 대출을 축소토록 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여지를 없앤 것도 '작은 정부'라는 구호를 스스로 무색하게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시장 실패 등 긴급한 상황에서의 정부 개입은 탓할게 없다"면서도 "문제는 정권 초기의 의욕넘친 정책이 초래한 '정부 실패'를 또 다른 정부 개입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