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수출-수입)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들어 수출이 급증함에 따라 반도체 철강판 자동차부품 기계류 등 원자재와 자본재 도입은 크게 늘고 있는 반면 대일(對日) 수출은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대일 수출은 지난해 19.4%, 올해엔 10.1% 뒷걸음질친데 비해 수입은 지난해 16.3% 감소에서 올해엔 8.2% 증가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대일 무역 적자는 지난해보다 40% 가량 많은 1백40억달러 안팎에 달해 외환위기가 닥친 지난 97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한국의 올 무역수지 흑자 예상치(1백10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 만성화된 대일 무역 역조 정부가 수출입 통계를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60년 이후 대일 무역수지는 단 한번도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경기가 상승세에 접어들면 대일 무역 역조가 심화되고 경기가 침체되면 적자폭이 줄어드는 현상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96년 사상 최대치(1백56억8천2백만달러)를 기록한 대일 적자는 외환위기가 본격화된 98년 46억3백만달러까지 줄었지만 경기 상승세에 접어든 99년(82억8천만달러)부터 다시 큰 폭으로 불어났다. 지난해엔 경기 악화로 주춤했지만 올들어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지난달 20일까지 1백25억4천3백만달러나 적자를 냈다. ◆ 취약한 제조업 기반 경쟁력 대일 무역 역조의 주범은 무엇보다 기계류와 부품.소재 분야의 취약한 기술 경쟁력이다. 이로 인해 단기간에 기술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국내 기업들은 수출용 원.부자재와 자본재를 대부분 일본에서 사오고 있다. 특히 최근 자동차 가전 등 주력 품목의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부품.소재 수요가 급격히 치솟는 데다 설비투자 회복에 따라 기계류 등 중간재 수입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1∼9월중 대일 적자 품목을 보면 철강판(11억1천9백만달러) 반도체(10억4천1백만달러) 자동차부품(5억9백만달러) 무선통신기기(4억2천4백만달러) 등 주력 수출제품의 역조 현상이 두드러졌다. 일본 경제의 더딘 회복도 대일 무역 역조를 부추기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석유제품 반도체 컴퓨터 섬유류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한 일본 시장의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 일본 시장에서 중국에 밀린다 지난 10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온 일본인의 소비성향이 중.저가 제품으로 옮아가면서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한국 상품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좁아지고 있다. 한국 제품의 일본 수입시장 점유율은 지난 2000년 5.4%에서 올 1∼7월중엔 4.5%로 추락했다. 반면 중국 제품의 점유율은 14.5%에서 17.1%로 치솟아 한국 상품이 뿌리내렸던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대일 수출의 경우 한국은 7.2% 후퇴한 반면 중국은 7.8% 늘었다. 통신기기도 한국(-13.7%)은 뒷걸음질친데 비해 중국(3백65.8%)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