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노력과 발자취.'

건설교통부가 지난 6월 펴낸 '주택백서'에는 이런 부제와 함께 50쪽짜리 연표가 붙어 있다.

지난 40년간의 주택정책이 모두 담겨 있는 이 연표에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난 98년 이후 성과를 담은 분량은 올해치를 빼고 모두 12쪽이다.

이 12쪽을 읽어보면 '자율화.활성화.폐지'라는 단어가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많이 등장해 눈길 끈다.

하지만 연표에서 빠져 있는 올해는 '억제.안정.부활'의 연속이었다.

DJ 노믹스 부동산정책의 성적표는 이렇게 과거 4년과 그후 1년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 내수진작 위한 건설경기 부양 =DJ정부 출범 초기에 빈 곳간을 채우고, 추락한 신용도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가 고심 끝에 꺼내든 카드가 건설경기 활성화였다.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사회간접자본시설(SOC) 투자를 매년 5∼15%씩 늘린 결과 98년 11조6천억원에 불과하던 투자액이 올해는 15조9천억원으로 증가했다.

부동산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 또는 폐지됐다.

주택구입시 양도소득세 면제 및 취득.등록세 감면, 주택 최초 구입자금 대출 등 금융.세제지원이 잇따랐다.

그 결과 건설경기는 주택부문을 중심으로 2001년부터 본격 회복국면으로 돌아섰다.

국내경제의 빠른 회복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 발목잡힌 부동산정책 =그러나 경기부양에만 매달린 결과 야기된 부동산 열풍은 집값 폭등이라는 '고통스러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99년 하반기부터 전셋값 급등이 시작됐다.

재건축 열풍, 월세 전환 확산, 외환위기 이후 주택공급 부족이 한꺼번에 시장을 옥죄면서 전셋값은 99년 16.8% 상승에 이어 2000년엔 11.1%나 오르는 급등세를 보였다.

전세난은 곧바로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이 기존 주택시장으로 몰리면서 매매.전세가 동반 상승세를 불러왔고 이같은 현상은 올해 상반기까지 계속됐다.

DJ정부에서 내놓은 17차례의 건설 및 부동산 대책은 모두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 서민 울린 두 마리 토끼 =99년 1월 분양가 전면 자율화가 발표됐다.

이어 한 달 뒤 분양권 전매제한마저 폐지됐다.

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경기 활성화라는 명분에 묻혀버렸다.

같은해 10월 청약통장 가입이 자유화됐고 재당첨 제한도 사라졌다.

주택시장의 완급을 조절하던 주요 정책은 '경기부양'과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이렇게 사라졌다.

분양가 자율화와 전매제한 폐지는 특히 저금리로 갈 곳이 없던 여윳돈을 주택시장으로 급속히 빨아들였다.

주식시장에서나 볼 수 있던 '단기투자'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사라졌던 '복부인'이 '떴다방'으로 모습을 바꿔 등장했고,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이 담긴 청약통장은 '복권통장'으로 전락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두 정책은 저금리 기조와 맞물리면서 분양가 상승-분양권값 상승-기존 아파트값 상승-분양가 재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며 '집값 대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 다시 규제로 =지난해 12월부터 재시행에 들어간 '소형주택 의무비율' 제도는 부동산 정책기조가 '투기억제'로 방향을 트는 출발점이자 규제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올해들어 1월의 1.8 대책부터 10월의 10.11 대책까지 모두 다섯 번에 걸쳐 나온 주택시장 안정대책은 사라진 규제가 다시 부활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99년 폐지됐던 무주택 우선공급제도가 지난 4월, 분양권 전매제한 조치는 9월에 각각 되살아 났다.

재당첨 금지제도 역시 10월 말부터 다시 시행되고 있다.

줄곧 경기부양을 위한 '당근' 역할을 해온 양도소득세 및 취득.등록세 등 부동산 세제도 투기억제를 위한 '채찍'으로 돌변했다.

1가구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요건이 올들어 '3년 이상 보유, 1년 이상 거주'로 강화됐다.

지난 9월에는 신축주택 구입시 5년간 양도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대상에서 서울, 과천, 5개 신도시는 제외됐다.

이처럼 폐지.완화됐던 정책들이 잇달아 부활.강화되면서 정작 땅에 떨어진 것은 집값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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