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화두가 된 IT(정보기술)투자의 효율성과 CIO(최고정보기술책임자)의 역할을 두고 학자와 은행장이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20일 서울 KAIST에서 열린 '제1차 21세기 금융비전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이 IT분야에 2조원 이상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은행 전산업무는 비효율성을 못벗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미국 은행들은 20년전 자동화기기(ATM)를 도입하면서 이미 통장을 없앴다"며 "한국의 경우 일본식 금융관행을 따르면서 미국식 시스템을 도입하다보니 ATM과 통장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은행간 합병 때도 전산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 기존 시스템중 하나를 고르는 데만 급급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은행에서 CIO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위상정립이 여전히 불분명하다"면서 "CEO(최고경영자)들의 신뢰가 부족한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국내 은행들도 이미 단순한 데이터 처리업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추가정보를 분석하는 정보계를 따로 분리하는 등 IT업무가 고도화되고 있다"며 "국민은행의 경우 3년전부터 마스터플랜을 세워놓고 실행해 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CIO 문제에 대해서도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전산통합 당시 IT전문가들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정보공개를 꺼리는 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면서 "솔직히 CIO를 꼭 IT전문가가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같은 논쟁에 대해 배순훈 KAIST 교수(전 정보통신부 장관)는 "그동안 IT부문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었지만 은행 창구직원은 오히려 늘어나는 등 효과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IT투자가 비효율적이라는 이 교수 의견에 동조했다. 반면 CIO의 역할에 대해서는 "CIO를 아예 없애고 CEO가 전산 효율화 문제를 직접 챙겨야 한다"고 말해 김 행장 편을 들었다. 한편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포럼 출범 축사를 통해 "전자금융거래에 대한 엄격한 감독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포럼의장을 맡은 이규성 KAIST 교수(전 재정경제부 장관)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현재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면서 "포럼이 국내 금융산업을 21세기 지식기반 경제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