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서기'를 반복해온 남.북한 경제협력이 이번엔 북한의 핵(核)개발이라는 '수렁' 속에 빠졌다. 지난달 초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뒤 북.미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남북 경협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 미국은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및 경수로 건설의 중단 등 구체적인 제재 조치를 거론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북한 핵 문제와 남북 경협을 연계시켜 '속도'를 조절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15일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우여곡절 속에서도 한 발짝씩 진전돼 온 남북관계가 핵문제로 중대 고비를 맞았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3차 회의'는 이같은 상황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남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 측량 11월중 실시 △개성공단 12월 하순중 착공 △남북 해운협력 및 동해어장 공동 이용을 위한 실무접촉 개최 등 6개항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은 두 달 전인 지난 8월 말 서울에서 열렸던 2차 경추위 때 발표됐던 내용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다. 동해 어장을 공동 사용하는데 노력하자는 것 정도가 새로 추가됐다. 같은 차관급 회의였던 2차 경추위 때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쌀.비료 지원 등 8개항에 이르는 굵직한 합의안을 이끌어내면서 경협을 급진전시켰다. 이때 합의로 성사됐던 북한 경제시찰단의 남한 방문 때(10월26일∼11월3일)만 해도 남북한 경협의 앞날은 장밋빛이었다. 박남기 북측 단장(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은 "젊은 경제전문가들을 다시 보내겠다"고 했고 남측은 북한이 한국개발연구원(KDI) 같은 싱크탱크를 만드는데 적극 협조해 주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 때는 이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찾기 어려웠다. 회담장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는 전언이다. 윤진식 남측 대표(재경부 차관)는 지난 7일 첫 전체회의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경협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가 조기에 해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담장 밖에 있던 기자들에게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고 한다. 남측 관계자는 "윤 차관이 이례적으로 두 번씩이나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었다"고 전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북측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대목이다. 그러나 북측 대표단은 신중했다. 개성공단 방문을 둘러싸고도 양측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 2일 실무협의회 때만 해도 남쪽에서 요구했던 개성공단 방문 문제는 이번엔 오히려 북한에서 방문을 요청하고, 남쪽은 "민간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오히려 북한이 경협에 적극적이고, 남쪽은 한 발 빼는 꼴이었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주변국으로부터 핵 문제로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남한과의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 싶어할 것"이라며 "남북한 경협은 당분간 급진전보다는 명맥만 유지하는 선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