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제발 그냥 내버려 둬라." 얼마전까지 중앙부처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전직관료가 자신이 몸담았던 행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담은 책을 펴냈다. 주인공은 13년간의 판사생활을 거친 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국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4월 1급으로 명예퇴직한 법무법인 바른법률의 임영철 변호사(45). 그는 12일 출간하는 '넥스트 코리아:대통령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란 책에서 "정부는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경쟁 틀'만 제공하면 되는데 일일이 나서서 선수처럼 뛰거나 한 쪽을 편들어 상대편을 퇴장시키고 심지어 반칙하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비리를 적발하는 공정위에서 일했지만 그는 한국경제의 근본 문제를 정부시스템에서 찾았다. "재벌이라는 경영체제는 가치중립적이다. 우리 여건에 재벌 경영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재벌이 태어났고 번성할 뿐이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실제 원인은 관치경제를 해온 정부에 있는데도 재벌에만 온갖 죄가 있는 양 정기적으로 '소동'을 벌이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그는 경제의 작동 패러다임이 민간 위주로 돌아온 만큼 이젠 공무원의 권한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한다지만 들여다보면 정부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공무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면 불필요한 각종 규제도 원천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볼 것이다." 임 변호사는 공무원이 '쓸데없이' 간섭해 실패한 대표적인 예로 지난 98년 국민의 정부가 밀어붙였던 '빅딜'을 꼽았다.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은밀하게 추진해야 할 사안을 정부가 시기와 대상까지 정해 강압적이고 공개적으로 추진했으니 잘될 수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임 변호사는 이처럼 불합리한 일들이 생기는 이유로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큰 권력이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장관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실.국장들에게 '전시성' 행정을 주문하고, 이들은 다시 장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일을 부하 직원들에게 시키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국민을 위한 행정'은 구현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지시를 장관들이 빠짐없이 기록하는 '받아쓰기 시험장'이 된다. 장관은 (자기부처로) 돌아오면 역시 제왕적 장관이 된다. 고위관료들이 부하 공무원들로부터 수발 받는 모습은 가히 조폭적이다." 지난해 공정위 직장협의회가 선정한 '바람직한 공정위상'을 받는 등 부하 직원들의 신망을 얻었던 임 변호사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 "'품질불량'인 공적 시스템의 현실을 알려야 대선주자들이 개선방안을 공약할 것이고 그래야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