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에 부는 자유무역협정(FTA) 바람이 확인되면서 우리정부와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이 지난 4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기본협정에 합의하고 일본마저 지난 5일 아세안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목표로 하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상태에서 우리측도 아세안에 대해 `러브콜'을 보냈지만 출발은 이미 늦고 말았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6일 "칠레와의 협상이 일단락된데 이어 현재 일본과 양국 정부가 참여하는 공동연구가 진행중이지만 앞으로 어느 나라와 FTA 협상을 시작할지에 대한 정부 내부적인 결정을 내년 1월까지는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FTA열풍 기지개=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은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주요 무역국 가운데 FTA 열풍이 비켜간 유일한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연합(EU)은 올들어 단일화폐까지 도입했고 93년 6개국으로 출발한 아세안은 97년에 10개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국이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발효시킨 것은 `FTA 도미노'를 촉발시킨 기폭제가 됐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우리가 지난 98년부터 FTA에 눈을 돌리고 99년말 칠레와의 협상을 시작하자, 중국이 2000년 11월 싱가포르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아세안과의 FTA 의사를 밝혔고 일본도 지난해말 처음으로 싱가포르와의 FTA협상을 끝냈다. ◆중국.일본 가세한 아세안시장 = 이번 프놈펜 회의에서는 중국이 아세안을 FTA파트너로 선점한 상태에서 일본의 추격이 시작돼 동북아 3국이 아세안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과 아세안 사이에 자유무역지대가 창설될 경우 인구 17억명에 국내총생산(GDP) 2조달러, 총교역액 1조2천억달러의 거대시장이 탄생, 유럽연합과 NAFTA를 견제할 수 있는 특급 경제블록이 탄생하게 된다. 중국은 이번에 2010년까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선발6개국과 교역자유화 체제를 만들고 2015년까지는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후발 4개국과 협상을 끝낸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일본 역시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아세안과의 공동선언문을 통해 10년안에 최소 4조9천억달러로 추정되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은 물론 우리가 아세안과의 FTA 협상에서 `농산물'이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동남아시장이 갖는 무게 때문. 동남아시장은 오래전부터 회교 자본 외에도 일본 자본이 침투, 사실상 장악한곳이기도 하지만 시장 자체가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엄청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는 `신흥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의 FTA가 체결되면 양측간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이 철폐되면서 그동안 일궈놓은 동남아시장 자체를 중국에게 내줄 수 있는 위기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한.일 양국이 조바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다. ◆업계 긴장감 역력= 업계는 중국과 일본의 발빠른 행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대(對)아세안 수출은 지난해 165억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10.9% 비중을 차지했지만 올 1-10월에는 11.2% 늘어나면서 비중도 11.8%로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일본 등과 함께 우리의 5대 수출시장인 셈이다. 수입도 지난해 159억달러로 전체의 11.3% 비중을 보였다. KOTRA가 99-2001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세안 주요 4개국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합이 치열한 125개 상품의 동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세안시장에서 높아지고 있는 `메이드인차이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은 45개 품목에서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51개 품목은 이미 중국에 밀리고있고 나머지 29개도 조만간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비록 2010년의 일이지만 중국과 아세안 사이에 FTA가 발효될 경우 우리 업계가 가격경쟁력 약화로 받을 타격은 상당할 것"이라며 "특히 경쟁이 치열한 섬유나 기계, 전자제품 등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로 발전하나 = 동북아 3국의 이런 움직임은 현재 논의중인 한.일 FTA나 한.중.일 FTA 구상과 맞물릴 경우 장차 `아세안+3'로 불리는 동아시아 전체가 단일 경제블록으로 묶일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즉,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히는 한.중.일 3국간 FTA가 체결된다면 장기적으로 아세안과 단일시장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한.중.일 3국간에 비관세장벽을 포함한 교역장벽이 완전 제거될 경우 한국의 수출은 5.36% 증가하고 수입은 2.94% 늘어나 전체적으로 120억달러 가량의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우리는 그동안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태국과 FTA 공동연구를 실시했지만 쌀을 비롯한 농산물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별 실익이 없는 것으로 잠정 판단했고 싱가포르의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중인 상황이다. 아세안과 FTA협상을 시작할 경우 최대 걸림돌은 농업문제가 되고 중소기업의 어려움도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중국과 일본이 아세안과의 FTA를 먼저 성사시킬 경우 우리 수출이 입는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결합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표시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향후 동아시아 FTA 추진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 무역협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권 구상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용역을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