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미주 대륙 34개국을 포괄하는 미주(美洲)자유무역지대(FTAA)를 창설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난항을 겪고 있다. 중남미 국내총생산(GDP) 총규모의 40%를 차지하는 브라질의 좌파 대통령 선출과 맞물리면서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상황은 더욱 꼬여간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정부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자와 `좌파 블록' 형성을 꾀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부 그룹은 미국 주도의 FTAA 창설이 `새로운 세기의 신(新)종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FTAA 협상 난항=지난 1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열린 제7차 FTAA 각료회의는 이날 하루 일정 회의 끝에 내년 2월 15일까지 각국의 관세인하 일정을 담은 초안을 제출토톡 한다는 합의만 이끌어 냈다. 이 초안을 바탕으로 향후 2년간 실무차원의 수정을 거쳐 2004년 말 브라질에서 개최할 정상회담에서 최종 협상을 보기로 결정했다. 제8차 각료회의는 내년 말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다. 미국의 로버트 졸릭 무역대표는 이날 회의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졸릭 대표는 "지금 이 지역이 정말 세계적 수준에서 경제적, 그리고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간에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서 회의에 큰 진전이 없었다고 시사했다. 세르지우 아마라우 브라질 통상장관은 부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아마라우 장관은 자국이 자유무역협정에 기꺼이 참여하나, 미국이 수입관세 및 농업 보조금 인하등 핵심 요구사항을 거부하면 미국을 배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마라우 장관은 "미국이 무역 장벽을 제거하지 않으면 FTAA를 가질 이유가 없다"면서 "남미내무역 통합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쟁점 사안=브라질 등 농산물 수출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남미 국가는 미국 정부가 자국의 핵심적 농업부문을 보호하기 위한 약 190억달러의 국내 보조금을 삭감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다른 경제대국들도 보조금삭감 조치를 취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이에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미 국가는 FTAA 내부 논의에서는 농업 보조금 문제 해결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인식한다. 따라서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등 다자간 무역 협상을 통해 이를 해결하자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다자간 협상에 따른 장기간 소요 시간을 감안하면 2005년 말로 잡힌 FTAA 공식 출범 시한을 훌쩍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新종속론 대두=회의 하루전인 지난달 31일부터 키토에는 전통의상 차림의 인디오 원주민을 비롯해 과야킬 등 에콰도로 주요 도시는 물론 중남미 전역에서 온 수천명이 속속 몰려들었다. 이들은 거리 곳곳에서 "FTAA는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다시 미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조치"라며 가두행진 시위를 벌였다. 1일 정오께 키토의 대학 강당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시위자들은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사태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면서 "FTAA를 타도하자", "세계은행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특히 콜롬비아 접경 툴칸에서 키토까지 140여㎞에 걸쳐 가두행진 시위를 벌인 인권단체 지도자 미리암 카베사스 씨는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FTAA가 북미의 다국적 기업을 위한 도구임을 비난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FTAA 최대 반대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당선자도 어떠한 FTAA 협상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그 동안 일관하게 밝혀왔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FTAA에 대해 "라틴아메리카를 미국에 강제합병하는 조치"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당선 확정후 첫 대국민 연설에서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확장을 최우선시하겠다며 아르헨티나를 첫 해외방문지로 발표했다. ◆협상 전망=미국은 지난 94년 12월 제1차 미주정상회의에서 FTAA 창설 추진에 합의한 이래 "알래스카부터 `티에라 델 푸에고'(아르헨티나 남단)까지"라는 구호 아래 FTAA를 추진해 왔다. 미국은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메르코수르, 안데안경제공동체(CAN) 등을 통합하게 될 FTAA의 출범을 낙관한다. 특히 지난 8월 행정부에 포괄적인 무역협상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정부는 최대 변수인 브라질에 대해 나름대로 강온전략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남미 일부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계절적 차이를 이용해 미국에 과일을 수출하려는 칠레가 우선 FTA 협상 대상국으로 꼽힌다. 미국은 중미의 여러 나라들과도 FTA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힌다. 이에 따라 남미 대륙이 대(對)미국 교역에 따른 이해관계의 차이에 따라 갈라져 메르코수르 등 남미 대륙 내부의 무역블록 체제도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섭 기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