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량 기업의 조건"을 내놓은 것도 벌써 20년전.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던 톰 피터스 박사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진 못한 듯 했다. 풍채좋은 할아버지처럼 변한 그의 모습이 처음엔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형형한 눈빛과 거침없는 언사,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았다. 최근 방한한 피터스 박사는 "가장 재미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장 재미있는 방식으로 만드는 기업에 매혹된다"며 "혁신 기업들이 넘쳐나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고 말했다. "올림픽,월드컵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진 지금이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적기"라고도 했다. 그 방법을 묻자 그는 주문을 외우듯 "독창적인(unique) 아이디어로 브랜드를 만들고 놀라운(wow) 성과를 올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대담=권영설 경영전문기자 ] -한국이 어떻게 하면 독창적이면서도 놀라운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제조업 중심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한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며 제조업에선 탁월한 실력을 쌓았지만 이제 고임금 국가가 돼 제조업으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제조업이 안된다면 어떤 분야가 유망한가요. "서비스 분야지요. 한국은 제조업에선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시장개척에도 성공했지만 서비스 산업엔 초점을 맞춘 적이 거의 없었지요. 싱가포르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고 말레이시아도 이미 시작했어요." -미래 주도산업에서 한국이 취약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약하다기 보다는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한국이 서비스산업에서는 강하다고 보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한국의 5대 재벌은 그들만의 브랜드로 어느 정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은행이 있습니까. 아니면 국제적인 광고대행사가 있나요. 일본만 해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서비스업체들이 적지 않아요. 은행도 세계 20대 금융기관에 꼽히는 것들이 제법 되지요." -그렇다고 이제까지 잘해온 제조업을 버리고 서비스업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중심이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이 경제발전의 축으로 제조업을 선택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이제는 어렵다는 거지요. 임금이 낮을 때는 정부가 힘을 갖고 주도해 경제개발을 견인할 수 있었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이 아직까지 그런 것처럼 정경유착이라는 폐해도 적지 않았지만요. 개발연대의 이런 시행착오들을 교정해가면서 서비스 산업에 중점을 두면 동북아 금융서비스 허브(Hub)가 되겠다는 한국의 비전도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도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역할모델이 됐습니다. 특히 소비를 진작시킨 것은 한국 정부의 공이지요. 일본 정부는 아직도 이걸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소비를 않는 일본식 모델은 수출로만 먹고사는 아주 작은 나라에나 어울리는 것이지요. 미국이 거대 경제라고 하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엔진은 바로 소비자들입니다." -제조업을 이끌어온 한국의 대기업들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한국의 재벌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좋은 제품을 만들고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재벌들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서비스에 중점을 둔 혁신적인 업체들이 한국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그 수가 아직 적다는 것이 문제지만요." -미국의 경우도 거대(Giant) 기업들이 많지 않습니까.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이미 예전의 공룡이 아닙니다.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것도 자체 규율이 아니라 경쟁의 논리 때문에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거대 기업 GE를 보세요. 그 회사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기업의 경우 생활도 편리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일자리도 많이 주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작은 기업이어야 된다는 말인가요. "규모가 아니라 혁신정신이 문제입니다. 월마트를 누가 작은 기업이라고 하겠습니까. 월마트는 지난 62년 창업할 때만 해도 창업가 정신에 충만한 조그만 업체였습니다. 80년대 들어 규모가 커졌지만 잇따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소매업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전체의 소매 비즈니스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혁신기업이지요. 월마트 MS(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혁신기업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조차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미국외에는 어떤 나라가 전망이 밝은 편인가요. "앞으로 25~50년 후를 두고 내기를 건다면 저는 미국과 중국 인도에 걸겠습니다. 이들 세 나라엔 기업가정신이라는 경제엔진이 있어요. 물론 중국과 인도에도 국영기업들이 있습니다만 창업가 정신이 넘치는 작은 기업들이 경제성장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이미 덩치가 커버린 대기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기업이 혁신성을 갖추려면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핀란드의 노키아를 보세요. 10여년 전까지는 안하는 것이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자제품 특히 틈새시장을 겨냥한 무선통신 사업을 빼고는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이런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요. 미국의 경우도 대기업들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기업들이 뭔가를 살 때는 언론에 소개되지만 팔 때는 잘 알려지지 않아 바뀌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지요."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자기계발에 관심을 갖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인기 있는 저자로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자기 계발은 지금 직업이 있건 없건,급여가 많건 적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과제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발달할수록 "화이트칼라"들이 해오던 일들이 자꾸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남들과 확실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실적과 능력을 책이나 문서,통계 등으로 증명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 남 앞에 언제든 내놓을 수 있는 자신만의 경제적 서명(economic signature)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