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개발된 혁신기법이 국내 기업에서도 새로운 혁신활동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6시그마에 이어 새로운 경영혁신도구로 떠오르고 있는 이 기법은 트리즈(TRIZ). "발명 문제 해결이론"의 러시아어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영어식 표현으론 TIPS(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라고 부른다. 원래 발명 방법론으로 개발됐으나 90년대초 미국에 소개된 이후에는 기업들이 설계 연구개발(R&D) 제조 안전 등 부문에서 주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공정 개선과 전략 기획 등 기업들의 혁신활동 수단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포드 P&G 크라이슬러 3M 일라이릴리 필립스 씨멘스 이스트먼코닥 등과 6시그마의 원조인 모토롤라 등 주요 기업 대부분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기술개발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트리즈를 이용하고 있다. 트리즈는 러시아의 발명가 겐리히 알트슐러(1926~1998)가 지난 1940년대 개발한 체계적인 발명 방법론이다. 그는 발명은 천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보편적인 발명원리를 찾아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후 50년간 2백만건 이상의 특허를 조사해 혁신적인 기술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법론을 체계화했다. 알트슐러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모순을 갖고 있으며 그 해결안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를 "창의적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에 최소의 자원을 투입해 모순을 극복하고 그를 통해 이상적인 수준을 증가시킴으로써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트리즈는 그러니까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사고방식,즉 문제를 시스템으로 이해하고(정) 이상적인 해결안을 떠올리며(반) 모순을 해결하는(합)의 체계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연구가들은 트리즈를 "주어진 문제의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얻어내는데 관건이 되는 모순을 찾아내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혁신적 해결안을 얻을 수 있는 방법론"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내에선 LG가 지난 96년 가장 먼저 도입했고 현재는 삼성전자 등 삼성계열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20개가 넘는다. 도입을 위해 세미나를 개최한 기업,기관도 20여개가 넘고 10여개의 대학이 세미나를 갖거나 관련 교과목에서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나름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지만 같은 시기 국내에 도입된 6시그마 경영에 비해서는 전파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다. 컨설팅부문에서만 연간 5백억원 시장을 형성한 6시그마에 비해 트리즈 컨설팅 시장은 50억원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초기"단계다. 전문적인 컨설팅업체도 트리즈코리아(대표 김영일)와 아이디어브레인(대표 강병선) 등 손꼽을 정도이고 한국트리즈협회(회장 김종수)도 이달초에야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아이디어브레인의 강 대표는 "국내 업체들이 그동안 6시그마 운동을 정착시키느라 트리즈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트리즈코리아의 김영일 대표도 "현장에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 트리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 .............................................................................. 알트슐러의 삶 트리즈의 창시자인 겐리히 알트슐러의 삶은 기구했다. 1926년 타쉬켄트에서 태어난 그는 14세때 수중잠수장치를 발명해 처음 특허를 받았다. 15세때는 고장난 잠수함에서 잠수복없이 탈출하는 방법을 고안해 해군 특허부에 근무하게 됐다.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수천개의 특허를 분석하던 중 패턴을 찾아내 46년께 트리즈의 토대를 완성했다. 그는 그러나 해군대위이던 48년 스탈린에게 "혁신과 발명에 대한 정부의 접근방식이 혼란스럽고 무지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가 25년형을 선고받고 50년에 구속됐다. 감옥안에서 그는 과학자 법률가 건축가등 수용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TRIZ이론을 다듬어갔다. 스탈린 사망후 석방됐지만 어머니가 자식을 다시 만날 희망을 잃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후 전세계 20만건의 특허를 분석해 1천5백가지 모순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라면 수백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 방법을 이용하면 15분만에 새로운 발명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트리즈 학교가 전국에 등장하자 74년엔 그와 그의 제자는 소련중앙위원회의 감시를 받게 됐다. 그는 생계를 위해 알토프라는 필명으로 트리즈 개념을 활용한 공상과학소설들을 썼다. 61년 첫번째 책인 "발명을 배우는 방법"을 썼다. 68년에야 그루지아에서 그의 이론을 증명해보일 세미나를 열수 있었다. 69년엔 "발명의 알고리즘"을 출간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인 89년 그를 회장으로 한 러시아 트리즈협회가 설립됐다. 그의 후계자들인 키쉬네프 스쿨 사람들 중 일부가 9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해 서구에서도 트리즈가 꽃을 피우게 됐다. 국내에 도입된 것은 "서방화"된 트리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