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돼 내년부터 값싼 칠레산 과일과 축산물이 국내 시장에 대량으로 들어온다. 이미 호주산 생우 수입이 이달 초 시작됐고 내년에는 쌀시장 추가 개방을 놓고 WTO(세계무역기구) 농업 협상이 예정돼 있다. 농업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농업계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국 농업은 우선 가격경쟁에서 미국 칠레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과 상대가 되지 않아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다. 하지만 이런 비관론을 깨고 우리 입맛에 맞는 차별화된 농산물을 생산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수출까지 해내는 '농업벤처인'들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계의 경쟁자들과 당당히 맞서고 있다. 시장개방 시대를 당당하게 극복해 나가는 농업 기업의 경영 현장과 노하우를 소개한다. ----------------------------------------------------------------- "한우 농가들은 국내 소비자들의 구미를 빨리 파악하고 시장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토종'이라는 절대적인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기술 개발'에 조금만 신경 쓰면 미국이나 남미, 호주 등 외국 축산업자들의 공세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27일 충남 천안시 성남면 가야목장. 대지 1만8백평 규모의 농장에는 국가 공인기관인 종축개량협회에서 인정한 우량 한우 3백50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지난 96년부터 '한우 벤처의 꿈'을 키워온 김수경 사장(44). 그는 한칠레 FTA 타결로 내년부터 칠레산 쇠고기가 무관세로 들어올 예정이고 이미 호주산 생우들이 이달 초부터 수입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뜻밖에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지난 83년 고향인 경기도 고양시에서 홀스타인 젖소 키우기를 시작한 베테랑 축산 경영인이다. 그는 지난 90년대 초 UR(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후 국내 축산시장에 비전이 없다고 보고 한동안 축산업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축산기술연구소로부터 '한우 종자 개량사업'에 참가해 달라는 '러브콜'에 다시 뛰어들었다. 김씨의 한우는 육질이 좋고 적은 사료를 줘도 잘 자라 시장에서 일반 소보다 30만원 정도 더 높은 값에 거래된다. 김씨는 "한우 사업도 철저한 기록과 자료 관리 등 마치 제조업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관리하듯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의 체형 변화를 가늠케 하는 체중, 사료 급여량 등을 비롯해 발정 및 수정시기 등 소의 성장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 체크해야 된다"며 "이를테면 발정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면 소들의 분만시기를 같게 해 관련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한우는 마리당 직접 생산비가 70만원을 밑돈다. 일반 한우는 90만원에 달해 김씨의 과학적 축산경영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폐사율을 4% 이하로 낮추기 위해 갓 태어난 송아지들을 수용하는 인큐베이터 보온방을 개발했다. 또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번식용 암소의 최적 체형을 구하는 신체충실지수(BCS)를 산출해 사료 투입량을 최적화하고 사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김씨는 "외환위기로 부채가 4억5천만원까지 불어나기도 했으나 뼈를 깎는 비용 절감 노력으로 지난 2000년부터 흑자를 기록했고 부채를 1억원 이하로 낮췄다"며 "송아지 값이 이 정도만 유지된다면 올해 1억5천만원 정도 순이익을 올려 부채를 완전 탕감하고 축사도 증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