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변화,미래'가 주류를 이루는 현실 경영에서 과거와 전통을 중시하는 역사가 차지할 자리는 전혀 없어 보인다. 경영자에게 역사란 어떤 의미일까? 아니 경영의 역사를 공부하면 과연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될까? 물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를 축적된 경험체로 바라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빌더스 앤드 드리머스'(원제:Builders & Dreamers,김은령 옮김,에코리브르,1만6천5백원)의 저자 모겐 위첼은 오늘날 온라인 쇼핑몰이 겪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 사실 19세기 통신 판매업체들이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 겪었던 문제들과 비슷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 자세히 소개된 것처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경영 원칙들,예컨대 마케팅,조직,재무,전략,인사관리 등의 개념들은 모두 짧게는 몇 십 년,길게는 몇 백 년 전에 이미 그 원형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경영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편협한 시각의 극복이 저자가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책 곳곳에는 역사를 통해 배우는 흥미있는 교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기업 경영에서 재무의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18세기 초 두 건의 대형 금융 스캔들,즉 프랑스의 미시시피 회사 버블과 영국의 남해포말 사건이 터지면서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회사 고위 임원이 회계 장부를 관리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은행,주주를 비롯한 주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인회계사라는 직업과 회계법인이 생겨났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다루는 전략 분야는 로마의 군사 전략과 중국의 손자병법,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등에서 불변의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초점과 목표,지피지기,자원배분,리더십,철저한 준비,속도와 기습 등은 현대 경영전략에서도 핵심 개념들이다. 특히 저자는 고전들을 인용하면서 전략에서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략이 성공을 거두려면 모든 구성원들이 확신을 갖고 지향하고자 하는 확고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고차원적 목표가 없는 전략이란 빈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케팅에 관한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생산 방식의 혁명과 운송 수단의 발전 이전에 마케팅의 원형은 지역적으로 제한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개별화된 마케팅 방식이었다. 운송 수단이 발달되지 않았으니 제품이 생산되는 주변 지역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철도 고속도로 항공 등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서 마케팅 패러다임이 바뀌었고,매스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매스 마케팅이란 넓은 지역에 산재한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대량 생산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점은 최근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발달 덕분에 고객과의 1 대 1 관계 형성이 훨씬 쉬워지면서 초기에 등장했던 개별화된 마케팅 방식이 다시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 언급한 방대한 경영학 관련 문헌은 물론 심리학 공학 군사학 경제학 등에 이르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저자의 주장대로 경영의 본질과 원칙을 이해하는 데는 역시 과거,전통,역사를 조망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기법보다는 원칙이 실제 경영에서 더 오래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이제 경영자들도 역사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이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