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칠레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일 것인가.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6차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판 기로에 몰렸다. 농수산물과 공산품 분야 양허(시장개방)안에 대한 합의를 가까스로 이끌어냈지만 예기치 않았던 금융.투자서비스 분야에서 돌발변수에 발목을 잡힌 상황이다. 한국 대표단은 협상을 중단하고 22일 귀국했다. 정부는 24일까지 금융서비스 시장과 '외국인투자촉진법(DL 600)'을 FTA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칠레측 요구에 대해 최종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칠레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지난 99년 12월 이후 3년 가까이 끌어온 FTA 협상의 '판'을 깨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 금융개방 왜 문제인가 한국 정부는 칠레가 과거 다른 나라들과 FTA를 체결하면서 금융분야를 제외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서 협상 초기단계에서는 금융개방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월 타결된 유럽연합(EU)과 칠레간 FTA에 금융개방이 포함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더구나 현재 진행중인 미국-칠레간 협상에서도 금융개방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한국측은 부랴부랴 지난 8월 열린 5차 실무협상에서 '금융개방'을 추가 안건으로 제시했다. 칠레측이 난색을 표시하자 '2년 정도 지나서 금융개방 문제를 다시 논의한다'는 문구를 협정서에 삽입하는 수준으로 양보하는 수정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칠레는 이번 6차 협상단에 금융담당관을 아예 포함시키지 않았다. 금융개방 문제는 한국과 논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명백한 '시위'였다. ◆ '나쁜 선례'는 안된다 정부는 칠레의 금융시장 규모로 볼 때 FTA에 금융을 포함시키더라도 당장의 실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금융이 제외될 경우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칠레측은 남미 지역의 금융시장 불안을 감안, 현지에 투자할 한국 금융회사에 특혜를 주지 않고 자국의 금융환경과 정책방향에 맞는 법규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칠레가 FTA 적용 예외대상으로 들고나온 외국인투자촉진법(DL600)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칠레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방침이다. ◆ '공'은 한국측에 협상 타결이냐, 결렬이냐는 한국측의 손에 쥐어진 상황이 됐다. 칠레측은 한국측이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를 24일까지 e메일로 통보해 달라는 전갈과 함께 협상장을 떠났다. 정부가 '수용'이 아닌 다른 협상카드를 제시할 경우 칠레측은 협상 결렬을 선언할 것임도 분명히 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새 정부 이후 원점에서부터 FTA 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껍데기' 뿐이라도 FTA 실현이라는 '한 건'을 올리려던 한국 정부의 졸속 협상전략이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현승윤.정한영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