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옌타이(煙臺)시의 대우종합기계 중국법인. 육중한 기계가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발산하는 뜨거운 열기에 체온까지 더해져 공장 내부는 사우나실을 방불케할 정도로 푹푹 찐다. 그러나 직원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아랑곳없이 밀린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바빴다. 일 거리가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 곳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지난 94년 문을 연 대우종합기계 옌타이 법인은 대우그룹으로서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곳이다. 99년 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종적을 감추기 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 곳이 바로 옌타이 공장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김 전 회장은 이 공장에 유달리 애착을 가졌었다. 96년 처음 공장을 가동할 때 만해도 옌타이 공장의 미래는 밝았다. 하지만 공장 문을 연 이듬해 갑자기 들이닥친 외환위기로 옌타이 공장은 하루 아침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본사에서는 6천3백만달러나 들여서 중국 땅에 그런 공장을 왜 세웠느냐는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공장에서 일하던 현지 직원들의 상당수가 집으로 돌아갔고 가동률도 급격히 떨어졌다. 벼랑 끝에 몰렸던 대우종합기계는 2000년 채규전 법인장이 부임하면서 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채 법인장은 외환위기로 수출길이 완전히 막힌 동남아 시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중국 내수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중국업체를 대상으로 굴삭기 금액의 일정 부분만 선납하고 나머지는 분할 상환하는 방식의 외상거래를 시작했다. 현금 회수율이 지극히 낮은 중국시장의 관행을 감안할 때 그의 시도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때마침 중국 정부가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굴삭기 주문량은 폭증했다. 외상도 99% 가까이 회수됐다. 그 결과 2000년 대우종합기계는 중국 전체 시장의 20%를 점유하며 업계 1위로 등극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얼마전 옌타이 대우 공장에는 소철나무 꽃이 활짝 폈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소철꽃은 1백년에 한번 올까말까하는 길조(吉兆)로 여겨진다. 옌타이 공장 사람들은 이제 대우종합기계에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취재팀 =팀장 한우덕 베이징 특파원, 오광진(국제부), 정태웅(산업부 대기업팀), 송태형( " 과학바이오팀), 김형호( " IT팀), 김미리( " 대기업팀), 허문찬(영상정보부 기자) in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