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막을 내린 올해 국정감사는 여느 때보다도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대북 비밀지원 논란 등 민감한 현안이 많이 돌출됐던 탓에 정부 관료들은 그야말로 바늘방석 위에 앉은듯 가슴을 졸여야 했다. 쏟아져나온 의혹과 온갖 '설'에 대한 해명자료를 챙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한 달 가까이를 보내야 했다. 의원들의 추상같은 질문 공세가 펼쳐질 때면 해당 부처는 초긴장 상태에 빠지기 일쑤였지만, 때로는 엉뚱한 질의 덕분에 본의 아닌 국면 전환이 이뤄져 가슴을 쓸어내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본적인 확인도 안거친 채 '설(說)'에 의존한 성급한 한건주의, 번지수를 잘못 찾은 뚱딴지같은 질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호통부터 쳤다가 망신을 자초한 엇박자 추궁 등으로 '실소'를 지은 사례도 일부 있었다는 후문이다. 경제 공무원들은 그 같은 사례의 하나로 한나라당 L의원이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감사에서 내놓았던 질의를 꼽는다. L의원은 서울 여의도에 건설 중인 '트럼프월드1' 아파트 부지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민주당 당료 출신인 P씨의 부인이 2백17억원의 서울보증보험 보증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혜의혹 거론자는 동명이인의 다른 P씨와 혼동됐다. 이 바람에 석탄공사 본사부지에 대한 특혜분양 의혹제기 자체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이에 앞서 24일 한국은행 국감 때 민주당 C의원이 총액한도대출 자금 운영 내역을 추궁하는 과정에서도 실소가 빚어졌다. C의원은 "총액한도 대출자금의 75%가 서울에 배정돼 (자금의) 서울 편중현상이 심각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한은은 "총액한도(당시 11조6천억원) 중 3조원은 한은 지역본부에서 은행 지방점포로 직접 배정하고 나머지 8조6천억원은 은행 본점을 통해 점포별로 할당하고 있다"며 "C의원이 각 은행의 할당분을 감안하지 않고 서울 편중을 추궁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내용 파악이 불충분한 데서 기인한 '함량미달 추궁'이었던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L의원이 '라이트' '마일드'와 같은 외국어 담배이름을 놓고 이남기 위원장을 몰아붙인 일도 과천 관가에서는 '부적절한 질의'로 거론되고 있다. 담배 이름은 공정위 소관분야가 아닌, 그야말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정신문화연구원 국감장에서 민주당 K의원은 "국학(國學)담당 교수들이 왜 영어로 강의를 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쳐 쓴웃음을 자아냈다. 연구원 관계자들은 "한국의 정신과 우리의 문화를 강의하는데 영어 수업이 왜 필요한가"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나라당 A의원이 건설교통부 국감에서 "그린벨트를 마구 풀어서 부동산 투기붐이 조성됐다"고 질타한데 대해서도 과천 공무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 건교부 간부는 "과천이 지역구인 A의원은 예전에는 '과천지역의 그린벨트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었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추궁"이라고 말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