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포스코에 입사해 자금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경희 사원. 1997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대학'에서 MSBA(MBA의 일종) 학위를 땄다. 남부럽지 않은 '간판'이건만 그는 3개의 자격증을 더 보유하고 있다. 미국 공인회계사(AICPA) 국제공인관리회계사(CMA) 국제공인재무관리사(CFM)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질 만한 자격증들이다. 올해는 어렵기로 소문난 국제재무분석가(CFA) 자격증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미 2차 시험을 통과해 최종 3차 시험만 남았다. 그것도 모자라 리스크 매니지먼트 자격증(FRM)에 도전한단다. 자격증 시대의 한 단면이다. 과거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운전면허증 소지 여부를 묻던 시절이 있었다. 입사 후 영업활동 등 업무 편의를 위한 요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격증이 직원들이나 기업에 미치는 효용 정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단순한 업무 편의용이 아니라 업무 전문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으로 바뀌었다. 삼성그룹이 사법연수원 졸업생을 대거 채용하거나 제조업체 생산현장 직원들이 '개인당 2~3개는 필수적, 4~5개는 선택적'이라고 할 만큼 업무 관련 자격증을 다량 보유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LG상사의 김영진 부장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이전 회사 지원에 힘입어 20개월간의 연수 끝에 취득했다. 김 부장은 "해외 프로젝트 업무가 많은 회사 특성상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자격증 보유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면 계약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갖는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최고봉'을 향한 티켓이기도 하다. 진정한 프로가 되는 길이다. 기아자동차 금형기술팀 금형반의 백윤관 반장이 그런 케이스다. 그는 기아자동차 생산직 사원중 최초로 금형 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백 반장은 "84년 일본 마쓰다자동차에 두달동안 금형기술 교육을 갔다가 그들의 천직의식과 프로정신에 자극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최다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이종덕 펌프설계부 부장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로 뛸 수 있는 자격증으로 무장하고 있다. 기계 응급처치 환경 건설 등과 관련해 12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이 부장은 "입사 후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공지식만 가지고 업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기 힘들었다"며 "현실에 안주하면 금세 뒤처지는 세상이어서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런 열정을 가진 생산 및 영업현장 일선 직원들은 수두룩하다. 한화석유화학 울산공장 구매과 심우택 사원은 12개, 현대모비스 환경사업부 김용호 과장과 LG전자 DDM사업부 청주 환경안전그룹의 우승태 기장은 11개의 자격증을 각각 갖고 있다. 제일모직 구미사업장 경영지원팀의 이강희 과장과 여수사업장 환경안전팀의 김종성 대리는 각각 7개와 6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유승수 SK(주) 직배팀 사원도 국제무역사 외환관리사 투자상담사 공인중개사 등 자격증이 6개다. 현대자동차 창원사업소의 안승균 사원도 열관리 지게차운전 위험물취급 대기환경 등과 관련된 자격증 14개를 과시한다. 자격증 마니아 수준이다. 대부분 결혼 후 취득한 탓에 아내가 "자격증 따려고 결혼했느냐"며 따가운 눈총을 주기까지 했다. 사내 동호회가 생길 정도로 자격증 취득 열기는 뜨겁다. 삼성중공업 구매팀은 요즘 주목받는 국제공인구매사(CPM)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지난해 연구 동호회를 결성했다. 올 상반기에는 5명이나 합격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1시간 가량 공부하고 근무시간 틈틈히 공부한 결과다. 회사가 적극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전기는 자격증 등급에 따라 적게는 1만5천원에서 많게는 30만원에 달하는 특별수당을 지급한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격증은 관련 과정을 개설해 준다. 현대모비스도 정보검색사와 전자상거래관리사 자격증 취득 희망사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지원하고 50여대의 교육용 컴퓨터를 갖춘 교육장을 제공한다. 인사고과에서도 자격증마다 20점의 가산점을 준다. 개인적 취미와 열정으로 취득한 업무외 자격증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한몫한다. LG전자 DND사업부 해외생산지원그룹의 김병노 차장은 아마추어무선사(HAM)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업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적십자 소속의 인명 구조원으로서 대구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등 통신이 두절된 인명구조 현장에서 맹활약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