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가 4일 2000년 6월의 현대상선 4천억원 대출과 관련, "당시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으로부터 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대출을 지시한 것으로 들었다"고 증언, '대북 비밀지원' 의혹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국회 재경위의 산업은행 국감에서 "2000년8월 산은총재 취임후 현대상선 4천억원 대출에 대해 보고받고 대출 당시 산은총재였던 이 위원장을 찾아갔더니 '나도 고민 많이 했다. 상부의 강력한 지시가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엄 전총재는 추가 증언을 통해 "이 위원장에게서 현대상선 대출에 대해 청와대한 실장으로부터 전화로 지시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상부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특정, '대출압력' 논란을 부채질할 `정황증거'를 추가했다. 앞서 엄 전총재는 지난달 25일 정무위의 금감원 국감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관련 질의가 쏟아졌지만 이에 대한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아 이날 증언을 결심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이근영 위원장은 4일 정무위 국감에서 "엄낙용씨의 주장대로 상부의 지시를 얘기한 적은 없다. 한 실장과 현대상선 대출과 관련해 전화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 "고 부인하고 나서 `대북지원' 논란은 한편으로 엄 전총재와 이 위원장간 진실게임의 성격을 띠게 됐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른 당사자인 한광옥 민주당 현 최고위원도 전면 부인하고 나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추후 사실관계 확인이 주목된다. 엄 전총재는 지난달 25일 국감에서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의원이 제기한 '4억달러 대북지원설'에 대해 "국정원 3차장에게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과 관련해 보고했다"고 말하는 등 의혹 관련 증언을 쏟아내 파문의 기폭제가 됐다. 엄 전총재는 나아가 이날 "현대상선 대출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며 "국정원 3차장과 청와대 회의보고 후 현대상선 김충식사장이 대출금 상환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해 25일 국감 증언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이근영 위원장은 "엄 전총재가 내게 찾아와 `김충식 사장이 정부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말을 했고, 이에 제가 전임자로서 골치아픈 일만 남겨 미안하다는 등의 말을 했는데 (엄 전총재가)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2년전 일이고 당시 게이트 때문에 굉장히 바쁘고 정신없던시절이라 뭣 때문에 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설혹 그런 일이 있더라도)나와 한 실장만 알텐데 엄 전 총재가 어떻게 알겠느냐"는 등 여운이 남는 발언도 섞어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의원들은 두 사람의 `대질신문'을 일제히 요구했으나 엄 전총재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반면 이 위원장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데 굳이 선후배끼리 얼굴을 붉힐 필요가 있느냐"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김준억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