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대외 개방 드라이브에 시동을 건 북한의 다음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은 지난 17일의 북.일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수교협상을 재개키로 합의한 여세를 몰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미간 대화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강조하는 등 대외 개방정책의 궁극적인 과녁은 '미국'임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최근 △배급제 개편 △임금 및 물가 인상 △환율 현실화 등 일련의 경제시스템 개혁에 시동을 건데 이어 대외 개방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유럽 주요국들과 국교를 맺은 북한이 일본 및 미국 등 서방 핵심 국가들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통해 최근 극도의 경제난으로 위기에 빠진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이다. ◆ 개방 정지(整地)작업은 끝났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추진해온 유럽 주요국들과의 관계 정상화와 대일 접근이 나름의 치밀한 외교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외곽 부대'로 불리는 유럽 주요국들과의 관계를 사전 정상화한 것도 궁극적인 대미 관계개선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은 지난 2000년에 이탈리아 영국과 수교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중 독일 네덜란드 등 13개국과 수교했다. 북한은 EU를 통해 △구호물자 지원 △시장경제 수업 △경제협력 증진 등의 실리를 얻는 일석이조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또 관리들을 EU에 파견, 자본주의 학습에 열중하고 있다. EU측도 북한의 전면 개방에 앞서 최대한 외교적 지분을 확보, 미국 일본과의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간다는 전략이어서 양측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측면도 있다. 존 사가 주한 EU대표부 정치경제담당관은 "EU는 북한에 대해 시장경제 교육 등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았다"며 "이를 위해 2004년까지 1천5백만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최종 목표는 대미 관계 정상화 그러나 북한의 이 모든 대외 개방 행보는 철저하게 '미국'에 맞춰져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이 추구하는 '개방'의 과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할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북한은 그동안 ADB 등 국제금융기구의 가입을 시도해왔으나 '대주주'격인 미국의 거부로 번번이 무산됐다. 통일연구원 김국신 국제관계연구실장은 "북한이 이번 북.일 회담에 앞서 백남순 외무상을 브루나이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보내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과 대화를 시도한 것은 북한의 최종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