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11 테러' 이후 세계에서 주가 상승폭이 가장 컸던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다. 1997년말 외환위기를 맞았던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환란 이전의 국가신용등급을 되찾은 나라도 한국뿐이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탄탄한 저력을 과시한 원천으로 '산업의 힘'이 꼽힌다. 반도체를 비롯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이 세계 시장을 누비면서 '산업 한국'의 흔들림없는 아성을 쌓아올린 덕분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작 국내 산업계에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 등 후발국들의 추격에 밀려 세계시장에서 설 곳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최근 미국 등 해외시장의 부진 속에서 정부가 금융 서비스 등 내수 비제조업 쪽에 육성정책의 초점을 맞추면서 '산업 소외' 현상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국가적으로 위기의식이 높아가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그런 '산업 푸대접'의 귀결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 한국의 산업을 이토록 위기상황으로 내몰았으며, 한국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을 어떤 관점에서 재설정해야 하는지 등을 12회의 시리즈로 짚어본다. ----------------------------------------------------------------- 최근 국내 경기가 전반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도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6,7월 두 달 연속 감소세로 뒷걸음질했다. 미래 성장을 담보할 산업시설 투자에 기업들이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무엇이 국내 기업들의 '산업 의욕'을 이토록 꺾어 놓았는가. 산업 현장에서는 '제조업 푸대접'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출자총액한도'로 묶어 규제한다든지, 산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주5일 근무제도를 무리하게 서두르는 등의 상황이 기업인들로 하여금 '산업할 맛'을 잃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외화내빈의 국내 산업 한국의 산업은 겉보기에는 '세계 13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한다.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과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등 IT(정보기술) 산업 간의 균형도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내 산업구조를 뜯어보면 취약한 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기술 생산성 브랜드 등 질적 경쟁력이 선진국보다 크게 뒤처진다는 평가다. 제조업의 평균 노동생산성(부가가치 기준)은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46.6%, 일본의 63.4%에서 맴돈다. 선진국의 주문물량을 대주는 하도급생산에 치중한 탓이다. ◆ 시급한 산업본위 정책 한국 경제는 1960,70년대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활용한 생산요소 주도형 체제에서 80,90년대엔 대량 생산시스템을 앞세운 자본투자 주도형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술 디자인 등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를 외국에 의존해온 탓에 투자 확대를 통한 성장 전략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 한국이 선진국들과 같이 지식 기술 생산성 등 질적 성장동력이 산업을 이끌어가는 혁신 주도형 체제로 서둘러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선 규제혁파와 자율적인 시장경쟁 환경 조성을 통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 기업경영 환경 개선을 유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정부조직도 난맥 정부 조직과 산업지원 시스템에도 변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기업제도와 구조조정 정책에선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 IT 분야에선 산자부.정보통신부.문화관광부, 기술정책에선 과학기술부.산자부.정통부 등이 업무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불필요한 규제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투자가 중복되는 등 산업정책이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경제부처들의 산업정책 기능을 한 군데로 모아 기업친화적인 실물경제 정책과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 [ 협찬 : 산업자원부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기협중앙회 경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