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가락처럼 휘어져 논두렁에 나둥그러진 전봇대, 홍수에 떠내려가 논두렁에 처박힌 직원들의 출퇴근용 자동차, 곳곳에 잘려나간 공장 진입로…. 8일 오후 강릉시 옥계면 라파즈한라시멘트 공장.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공장은 여전히 폐허다. 프랑스인 실뱅 가르노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사무소 한켠에서 대책 회의를 서두르고 있었다. 지난 2000년 프랑스 라파즈 그룹이 이 공장을 인수한 이후 최대 위기다. "끔찍할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직원들이 합심해서 복구에 매달리고 있어 곧 정상가동할 수 있을 겁니다." 가르노 사장은 애써 웃으며 얘기했지만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시멘트 공장 핵심시설인 킬른 4대가 태풍 '루사'의 직격탄을 맞았다. 연간 7백40만t의 크링커(시멘트 반제품)를 생산하던 설비다. "16일부터는 공장을 일부 재가동할 수 있겠지만 완전 복구는 적어도 1∼2개월은 걸릴 것 같습니다." 박종길 이사는 생산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하루 13억원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공장이 가동될 때까지 생산 중단에 따른 예상피해액은 2백20억원. 복구비와 생산피해를 감안하면 태풍 루사 피해는 5백억원에 이른다. 직원들이 중장비로 오물을 치우고 있지만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다보니 언제 정상화될 수 있을지 아득하다고 하소연한다. 라파즈 한라 직원들은 공장과 함께 집안 수해도 복구해야 한다. 사원 아파트에 물이 차는 바람에 자가용 승용차 81대가 떠내려 가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강릉 시내에 사는 직원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직원 개인적인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장 복구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공장 가동이 우선이라지만 피해가 더 심한 이웃 마을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진흙과 자갈로 뒤덮인 마을 논밭에는 공장 중장비가 동원됐다. 임시 교량도 세웠고 직원 60여명으로 수해복구지원단도 꾸려 강릉시내에 파견했다. 라파즈한라의 대외협력팀 김치영씨는 "우리 마을, 내 집안이 다같이 평화로워야 우리 회사도 발전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무너진 마을길을 다시 세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이번 수해로 라파즈를 다시 보게됐다고 입을 모은다. 강릉=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