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반월.시화산업단지. 더위가 한풀 가셨지만 여름동안 늘어진 공단의 분위기는 좀처럼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직원들이 휴가에서 복귀했어도 야근체제를 재가동한 업체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주고받거나 일찌감치 옷을 갈아입고 공장문을 나서는 직원들만이 간혹 눈에 띈다. 반면 담벼락에 어지럽게 내걸린 구인플래카드는 지난 봄에 비해 부쩍 늘었다. 인력난은 회복될 기미없이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이곳의 중소기업들을 바짝 죄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는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의 공장 이탈에 중소기업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자고 나면 사라지는 외국인 노동자=염색단지에 위치한 Y염직은 지난달에만 2명의 산업연수생이 이탈했다. 배정받은 13명의 산업연수생 중 벌써 9명째다. "데려다 놓으면 도망갑니다.이젠 대책이 없습니다.최근엔 임금도 올려줬지만 효과가 없어요." 남아 있는 직원들의 업무를 2∼3중으로 부과해 가동하고 있지만 납품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그나마 남은 4명마저 언제 사라질지 몰라 긴장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C금속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올해 들어 연수생 10명을 배정받았지만 10명 모두 공장을 떠났다. 이 회사의 대표는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인력부족으로 공장가동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연소기기 생산업체인 A사는 연수생 이탈로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다 지난 5월 5명의 연수생을 재배정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두달 뒤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탈자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연수생 이탈은 하반기 들어서면서 크게 늘어났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특히 피혁 섬유 기계 등 이른바 3D업종의 경우는 심각한 수준이다. 연수생들이 맡던 업무는 단순노무가 많아 빠진 자리를 메울 만한 국내 인력도 찾기 힘들다. ◆3D업체 '빈익빈'가중=기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4천8백명이던 반월·시화공단 산업연수생은 올 8월말 현재 1천5백명선으로 줄어들었다. 1년여 만에 3분의 1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직장을 이탈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공단을 떠나기보다는 공단내 남아 더 좋은 조건의 업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반월·시화공단 내에는 이러한 불법체류자가 2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임금,복지 등을 비교해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미련없이 자리를 뜬다. 이 때문에 임금수준이 떨어지거나 근무조건이 열악한 소기업의 경우 연수생 이탈이 더욱 늘어나는 실정이다. 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 관계자는 "초기 연수생들은 기술을 배우겠다는 의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불법체류자로 남더라도 더 나은 곳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탈한 연수생들은 임금수준이 높은 서비스 분야에 주로 몰린다. 여성들의 경우 유흥업소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자리를 잡고 동료 연수생들을 유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빈익빈'이 가중되는 셈이다. ◆"소속국가에 손배 요구해라"=기협과 산단공 등에는 산업연수생 충원을 늘려달라거나 이탈 방지 대책을 바라는 중소기업의 건의가 크게 늘고 있다. 하루 전화량이 30∼40여통에 이를 정도다. 업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이탈 외국인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다. 이를 위해 불법체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인 연수생이 이탈할 경우 소속국가 알선업체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보증제도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근로환경 및 임금의 개선을 위한 지원자금을 요청하는 사례도 많다. 또 연수생 이탈과 관련없이 연수생 제도와 산업기능 요원의 확대를 희망하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자진신고한 불법체류자들이 내년 3월까지 출국해야 돼 인력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건설기자재 생산업체인 S사의 관계자는 "현재 고용중인 연수생과 불법체류자 등 8명이 내년 상반기중 모두 한국을 떠나야 할 상황"이라며 "한사람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생산에 차질을 빚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기존 연수생의 이탈도 문제지만 내년 3월 이후 불법체류자가 추방되기 시작하면 연수생의 연쇄적인 이동도 가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를 내보낸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가 필사적으로 인력구하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년 3월 이후 나갈 불법체류자는 산업연수생 5만6천명을 포함해 25만6천여명에 이른다. 따라서 몇만명의 연수생 추가도입만으로는 인력난 해소가 불가능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중소기업인력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반월공단=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