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의 쓸 만한 이공계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석유화학 정유 등 중화학 산업의 생산현장은 물론 전자 정보기술(IT) 벤처 등에서도 고급 엔지니어 인력난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근들어 우수한 엔지니어의 배출이 줄어든 데다 취업을 한다 해도 지방에 공장이 있는 제조업체는 기피되기 때문이다. 화학업체인 A사의 경우 지난 99년 플라스틱사업 본부에 배치된 70명 가운데 1명만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올초 원료사업부에 발령받은 엔지니어 5명중 4명은 입사한지 몇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잦은 교대 근무로 일하기 힘든 데다 비전도 없다는 것이 이직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조선업체인 B사도 현장에 직접 투입할 만한 엔지니어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극심한 공장근무 기피 현상으로 수도권대학 출신 엔지니어들이 잇따라 그만둔 뒤 최근에는 인근 지역 대학 졸업자가 전체 신입사원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인사담당 관계자는 "조선업에 대한 인기가 전보다 떨어지면서 조선공학과 졸업생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한국이 조선업계 1위를 고수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초우량 정유업체인 C사조차 엔지니어들의 수도권 선호 경향으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8년초 뽑은 엔지니어 가운데 공장에 배치된 23명중 10명이 그만뒀다. 이로 인해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남아 있는 현장 엔지니어들의 불만도 가중되고 있다. 젊은이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정보기술(IT) 분야 역시 이공계 인력난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데이콤종합연구소의 경우 지난 99년 2백17명에 이르렀던 연구원이 현재 80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포털업체인 NHN은 대졸 신입사원을 재교육하기 위해 연간 매출의 1%수준인 5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NHN의 김영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소한 2년정도는 가르쳐야 쓸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벤처기업 역시 기술 인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벤처기업 코아텍의 경우 올해말까지 대전대덕본사엔 생산부문만을 남겨두고 연구 등 다른 기능은 분당으로 옮길 예정이다. 코아텍 관계자는 "KAIST 출신들은 대부분이 수도권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장비 벤처기업인 블루코드테크놀러지 관계자는 "지난해 어렵게 4명을 뽑았는데 1명만 남고 모두 그만뒀다"고 밝혔다. 외국계 연구소일지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55개 주한 외국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41.8%가 기술개발에서 가장 큰 애로점은 우수 연구원 확보라고 응답했다. 자금 조달이나 예산 확보는 각각 10.9%에 불과했다. 김태완 삼성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은 "많은 공대생이 배출되지만 정작 쓸만한 사람은 드물다"며 "새로운 첨단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창조적인 사고능력을 갖춘 엔지니어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산업현장에서 인력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공계 인력들을 생산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할때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