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뜨는 산업이 있고 지는 산업도 있다. 업계의 선두에 오르고 세계 시장에서도 강자로 우뚝 선 기업들은 그 흐름을 제대로 타고 있는 회사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60년대 주도산업은 식품 합판 가발이었다. 일손은 많고 공장은 적은 시절이었다. 60년대에 지은 중화학공장들이 빛을 발한 건 70년대였다. 80년대엔 다시 섬유와 해외건설을 밀어내고 반도체 자동차 조선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90년대 들어선 이 구도 위에 정보통신 석유화학이 더해졌고 섬유가 옛명성을 되찾았다. 다시 2000년대 들어선 반도체 이동통신 디지털가전 전자상거래 바이오 콘텐츠 정밀부품 등으로 주도산업의 얼굴이 모두 '디지털' 색채를 띠고 있다. 이런 흐름은 돌이켜보면 단순하고도 쉬운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쉬운 과제일 수가 없다. 외부환경변화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추세를 예상하며 거기에 더해 과감하게 위험을 감수(risk taking)해야만 주도 산업의 흐름에 승차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의 하나인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우도 그렇게 해서 나타났다. 지난 83년 삼성이 D램 반도체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기업의 사활을 건 모험이었다. 일본과 미국 업체들은 삼성이 반도체에 뛰어들면 가격폭락이 불가피하다며 경고도 하는 등 진출의지를 약화시키는 사인을 자주 보냈었다. 그러나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몇 년 간 적자를 봤지만 87년 모든 메이커들이 구형제품으로 여겼던 256K D램의 수요가 폭발하자 삼성은 당시까지의 적자를 일거에 만회했다. 이후 91년 1메가 D램 시장에서도 또 한번 붐을 타면서 삼성전자는 메모리 부분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런 모험투자는 그러나 왠만한 리더십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회사가 망할 가능성도 있을 때 투자를 결정하는 일은 정부 주도거나 강력한 오너체제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초일류기업이 되는 또 다른 길 역시 남보다 한발짝 '먼저' 나서는 일이다. 개척되지 않는 분야에 진출해 업계의 표준을 선도하는 것이다. 윈도운영체계시장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 경우엔 마이크로스프트가 모든 컴퓨터 구입자들에게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나눠준 것처럼 초기엔 미래를 내다보는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런 능력만 된다면 업계 표준을 만들어가며 수월하게 선도업체가 될 수 있다. 국내 업계가 주도해온 CDMA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1,2위 휴대폰 생산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구조적인 우위다. 연구자들은 이밖에 끊임없는 혁신, 선택과 집중, 재무구조의 건전화, 미래에 대비한 연구개발(R&D) 투자, 인적 자산의 확충 등을 파워기업이 되는 조건으로 들고 있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