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능성에 따라 국제 원유가격이 배럴당 30달러선을 위협하는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미 경제회복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이 26일 보도했다. 세계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나이지리아, 알제리, 베네수엘라 등 일부 석유수출국기구(OPEC)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시 원유공급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즉각 증산에 나서겠다고 호언하는데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OPEC 관계자들은 다음달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정례 각료회의에서 공식적인 증산 결정이 내려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고유가는 기업 수익성과 가계소득을 떨어뜨려 결국 경제의 버팀목인 소비지출을 저해한다면서 이를 반영해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이미 하향조정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국제유가가 지난주 배럴당 30.11달러로 치솟고 주미 사우디 대사인 반다르 빈 술탄 왕자가 27일(현지시간) 텍사스 목장에서 휴가중인 조지 W.부시 대통령을 만날예정인 가운데 사우디 측은 미국과 국제 원유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유사시 증산방침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국별 쿼터 배정에 따른 감산으로 하루 600만배럴의 추가 생산능력이 있는 OPEC은 겨울철 수요증가 예상에도 불구하고 공식 산유량을 늘릴 뜻이 없음을 내비치고 있다. 현재의 고유가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내년의 유가 붕괴 가능성을 고려해 증산 문제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이 OPEC의 기본 입장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과거 네차례의 미 경기침체가 배럴당 30달러선의 고유가와 함께 닥쳤거나 고유가가 경기침체에 선행(先行)했었음을 상기시켰다. 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예전보다는 낮아져 이제는 배럴당 30달러 시절로의 회귀가 반드시 경기침체의 재연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한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아직 고유가 충격이 감지되지 않는 것은 수입 휘발유 공급이 늘어난데 힘입어 휘발유값이 1년전보다 갤런당 3.5센트 낮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가가 앞으로 꾸준히 오르면 가정용 난방유 값과 함께 휘발유 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골드만삭스의 추산으로는 달러표시 유가 오름세가 지속되면 그러잖아도 고용시장 위축과 임금상승률 둔화로 많은 가정의 살림이 쪼들리는 어려운 시기에 미국의 가계소득 가운데 50억달러가 산유국들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OPEC은 지금 상당한 증산 압력을 받고 있다. OPEC 자체 수급예측에 따르면 오는 4.4분기 세계 원유수요는 하루 7천780만배럴로 전분기대비 180만배럴 불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계절적인 요인 때문이다. OPEC은 이미 공식 산유쿼터를 150만배럴이상 웃도는 하루 2천500만배럴 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런던의 `글로벌 에너지 연구센터' 부소장 레오 드로야스는 "설혹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신중한 처신이 낫다는 게 OPEC의 판단"이라며 OPEC은 내년 1월까지는 공식적인 증산 결정을 유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유가는 원자재 코스트를 상승시켜 기업 마진폭을 줄이게 되는데 특히 작년 12월 최저치에 대비한 항공유 가격 상승률이 4%나 돼 항공업계의 타격이 크다. 거시경제지표의 수정도 불가피하게 만들어 경제예측기관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는 올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연율 3.25%에서 2.5%로 낮췄다. 이것도 평균 유가를 배럴당 26∼27달러선으로 가정한 것이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비축량은 지난 3월이후 계속 줄고 있으며 세계 원유재고량도 하루 60만배럴씩 감소하고 있다. OPEC은 내년 원유수요가 비교적 완만한 속도인 하루 79만배럴씩 늘어 하루 7천695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비(非)OPEC 회원국 공급량은 하루 최고 92만배럴까지 증가할 것으로 OPEC은 보고 있다. 그러나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도 비OPEC 산유국의 증산규모가 하루 70만배럴에 못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원유시장에 공급이 넘칠 것이라는 게 OPEC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아시아 국가에서는 고유가로 인한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화가치가 올라 달러로 거래되는 유가의 상승분을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양대 원유수입국인 일본과 한국은 올해 달러화에 대비한 통화가치가 8%이상 상승했다. 아시아의 가장 큰 걱정은 고유가로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지출이 줄어 결국 대미 수출 감소와 성장률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