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일본기업들의 회계 정확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20일 "숨겨진 일본"이라는 제목의 논평기사를 통해 수많은 일본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사기를 저지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 적어도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회계장부를 발표하고 있다는 의혹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에 엔론과 같은 형태의 회계부정이 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경영진은 분기별 수익에 대한 압력도 받지 않고 주주보다는 종업원들에게 책임을 지며 주식매입청구권을 가진 경영진이 거의 없어 개인적 이익을 위해 주가를 띠울 유혹을 받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난 98년 시가평가제도가 도입돼 회계기준이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본의 회계장부 공개는 전통적으로 불투명한 일이었다고 신문은 말하고 우선 이를 확인할 회계사의 숫자가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공인회계사의 숫자를 4배 늘리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숫자는 현재 1만4천700명에 불과, 미국의 33만명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또 통산성의 도이 아키토 기업회계국장은 일본의 회계관행에 대한 비판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본의 최고 경영진들이 회계장부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종종 내부통제가 안된다"고 시인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금융자문사 딘 유스트는 외국기업들이 일본기업들과의 합병협상에서 자주 철수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재정적 강도와 순가치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일본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공개하는 것과 실제 재정 상태간의 차이가 하도 커서 이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는 '소카이야'라고 불리는 기업약탈산업이 발달하기도 했었다고 신문은 말했다. 회계기준의 개선으로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숨길 것이 너무 많아서 일부 기업들의 은닉기도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명백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부동산으로 지난 80년대에는 부동산가격이 급등, 기모노 제조업체로부터 건설업체에 이르기까지 전례없는 부동산 매입붐이 일어났으나 이제 그 거품은 꺼지고 가격은 매입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한 상태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따라서 건물과 토지를 시장가격대로 장부에 기장하도록 하는 감액회계의 도입에 강한 저항이 일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신문은 말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연금회계규정도 연금채무를 낮게 발표해온 기업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줬으며 시가평가규정 때문에 대형 상업은행들도 주가하락을 반영해 3조엔에 달하는 잠재손실을 장부에 기록해야 할 형편이다. 토이 국장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투명성을 추구하겠다고 말했으나 당국이 특히 기업의 생존에 위협이 될 경우 진실을 외면할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PWC의 유스트는 "규정은 지금 제정됐지만 시행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처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신문은 말하고 대형 시중은행들은 모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인 8%를 충족하고 있지만 이들 기초자본의 절반 이상이 미래수익에 대한 세액공제로 돼있고 은행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자본도 거의 쓸모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또 부실채권이 최소한 43조엔에 달하고 민간부문의 추산에 의하면 그 2-3배에 달해 당국은 이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즉각 쌓으라고 하는 대신 몇년간에 걸쳐 해결하도록 시간을 주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감독당국이 강하게 밀어붙칠 경우 금융시스템 전체가 붕괴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 특파원 c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