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0년 12월 이후 1년8개월 동안 중단됐던 칠레와의 FTA 공식협상을 이달 말께 칠레에서 재개한다고 2일 밝혔다. 협상단 일부에서는 "앞으로 한 두 차례의 회의를 거쳐 이르면 9월, 늦어도 10월쯤엔 양측이 협상을 전격 타결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정권말기에 통상 문제를 숙제하듯이 해치우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타결 가능성 있나 이번 회의는 지난 99년 뉴질랜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석상에서 협상원칙에 합의한 뒤 다섯번째 갖는 공식 협상이다. 양측은 그동안 자유무역에서 농산물을 예외로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 접근에 실패했다. 교착상태에 물꼬를 튼 것은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칠레 고위급 협의. 한국 정부가 1천4백32개 농산물중 사과 배 쌀등을 제외한 나머지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폐지 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수정 협상안을 내놓은 것. 포도의 경우 계절관세를 적용, 향후 10년간 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정부 관계자는 "사과 배 등 핵심 농산물의 경우도 다른 농산물의 개방일정과 연계해 탄력적으로 개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타결 의지를 내보였다. 칠레쪽에서도 지난 6월에 한국측에 보낸 서한을 통해 한국이 관세폐지 일정을 명확히 한다는 조건 아래 자유무역대상에서 제외시킬 공산품의 범위를 줄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칠레 FTA 왜 서두르나 세계적 추세인 'FTA 붐'에 한국만 외톨이로 남을 수는 없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 가운데 FTA를 하나도 맺지 않은 나라는 중국과 대만, 몽골 정도에 불과하다. 칠레가 다른 지역과의 FTA 협상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정부를 초조하게 만든다. 칠레는 지난 4월 유럽연합(EU)과 협상을 타결지었다. 올 하반기부터는 일본과도 협상을 본격화할 채비다. 한국은 칠레 세탁기 판매량의 90.4%를 차지하고 있다. 냉장고는 49.0%, 장판지 43.4%, 에어컨 37.4%, 자동차는 23.7%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치적 상황'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교섭본부가 농림부나 국회의 논리에 밀려 중국과 마늘협상에 나섰다가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에 한.칠레 협상만은 주도적으로 일을 마무리지으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