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의 불안이 좀체 가시지 않자 미국과 일본경제 간의 '10년 주기설'이 들먹여지는 모양이다. 물론 일본 내에서 미국경제를 비관적으로,또 일본경제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쪽이 제기하는 주장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80년대 잘 나가던 일본과 헤매던 미국,90년대 반대로 뒤집혔다가 이제 다시 상반된 그림을 그릴 차례라는 10년 주기설. 글쎄,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경제의 기술적(?) 반등이야 있겠지만,지금은 미국과 일본만 있는 것도 아니고,어떤 조그만 변수조차 가벼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 설킨 글로벌 경제다. 더구나 지난 10년간 무얼 준비했는지를 따지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어쨌든 이런 단순반복이 가능한 것일까. 성장과 침체가 54년을 주기로 반복된다는 '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이보다 짧은 8∼10년 주기로 일어나는 기업 설비투자 변화에 따른 '주글라 중기파동'.통계에 기초한 이런 것들의 한계성이 쉽게 지적될 만큼 내외적인 경기교란 요인이 많아졌다. 1차,2차 오일쇼크와 걸프전 등을 배경으로 나온 오일쇼크(고유가) 10년 주기설.부동산과 관련한 부동산 10년 주기설 등은 또 어떤가. 지금도 억지로 꿰맞추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은 결코 아니다. 대략 6년 정도의 주기로 발생한다는 반도체 사이클만 해도 그렇다. 사이클이 짧아진 건지 없어진 건지 헷갈린다. 항공운송산업 10년 주기설 등 산업마다 각종 주기설이란 게 있긴 하지만 이를 주시한다는 것이 어째 한가롭게만 들린다. 미국 신경제가 한창 잘 나갈 때 경기사이클이 있다느니 없어졌다느니 등의 얘기가 많았다. 그래도 사이클이 있다는 쪽은 신기술로 인한 경기교란 가능성을 애써 축소하려 했고,사이클이 없어졌다는 쪽은 신기술의 가능성을 맘껏 주장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둘 다 틀렸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경기교란은 분명한 실체였다. 기술혁신이 사이클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해졌다. 혹자의 주장처럼 어쩌면 인간본성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호ㆍ불황의 반복은 끊임없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갈수록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주기설을 찾아 의존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잘못 받아들이면 오히려 화만 부를 수도 있다. 67년 베트남 특수,77년 중동 해외건설 특수,87년 3저 호황은 이른바 한국경제 10년 주기설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7'은 행운의 숫자였다. 하지만 97년에 벌어진 일은 과거 10년 주기의 그것과는 분명 달랐다. 앞으로 5년 후 2007년의 한국경제는 또 어떤 모습일까. 좋은 의미의 주기설을 너무 믿고,나쁜 의미의 주기설은 무시하는 것.정작 큰 위기는 바로 이런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