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구조 변해야 한다 ] 당비를 내지 않고 오히려 '품삯'을 받고 일하는 당원이 많은 현행 정당제도를 유지하는 한 깨끗한 정치는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은 당원 수백만 명의 '품삯'을 마련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정치자금의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품삯'을 받는 당원을 관리할 경우 중앙당과 지구당의 경비는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선거가 없는 해라도 1개 지구당을 유지하는데 연간 1억원 가량의 경비가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당이 2백20여개의 지구당과 중앙당 경비를 조달하려면 1년에 최소한 3백억~4백억원은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당이 후원금과 국고보조금을 합해도 이 정도의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모자라는 경비는 어디서든지 마련해야 당을 꾸려 나갈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이러한 자금을 여당 총재가 소위 '통치자금'을 마련해 충당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통치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같은 고비용의 정당조직이 유지되고 있어 음성 정치자금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비용 정당조직의 기원은 5.16 군부세력이 조직한 민주공화당 때부터다. 공화당은 사무국 조직과 함께 사무국장-조직부장-청년부장-부녀부장-연락장(동책)-활동장(반책) 등을 만들어 선거운동원들에게 '품삯'을 주고 유권자를 동원했다. 이후 이같은 정당 조직은 우리 정치의 기본틀로 굳어졌다. 민주화와 정보화시대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당들은 아직도 고비용-저효율의 동원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품삯 당원과 사무국 조직'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폐단 외에도 비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다. 고비용의 정당조직은 방대한 정치자금을 마련해 오는 특정지도자에게 의존하는 사당화(私黨化) 현상을 빚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야가 국회에서 민생관련 법안을 다루지 않고, 원외 사무국조직을 동원해 국회 밖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기까지 한다. 야당이 국회 내에서 정당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외투쟁으로 나갈수 있는 여건도 이처럼 돈으로 돌아가는 정당구조로 인해 조성된다. 이에 따라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가 권위주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당비를 내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진성 당원'이 없기 때문에 '품삯 당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다. 선거때 마다 후보들은 '품삯'을 받고 일하는 당의 공조직이 워낙 열악하고 비효율적이어서 자발적이며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조직을 동원한 선거운동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조직은 소위 비선(秘線) 조직이기 때문에 정치적 비리의 온상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돈이 적게 드는 정당을 만들려면 첫째, 정당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당의 핵심을 당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는 당원이 없더라도 서포터(supporter)가 많으면 선거에 이겨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우리도 당원이 아닌 서포터가 당의 핵심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젠 우리 정당이 '품삯 당원'을 관리하는 대신 서포터를 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서포터 중에서 정치에 관심이 많고 당비를 내는 사람을 당원으로,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을 후원인으로, 일시적으로 당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자원봉사자로, 단순히 표를 던지는 사람을 단순지지자로 구분하여 당의 지지기반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둘째, 현행 중앙당-시도지부-지구당 사무국조직을 폐지하고 정당을 디지털화해야 한다. 현행 중앙당 대신 비상설 전국위원회를 두고, 시도지부와 지구당에도 사무국 대신에 비상설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 당원 관리는 사이버 당원제도를 도입해 전국위원회나 지역구 위원회에서 인터넷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정보화시대에 부합할 것이다. 앞으로 지지자와 진성 당원 중심의 정당을 육성하려면 새로운 국고보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처럼 의석수나 득표율에 따라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줄 경우 당비를 내는 당원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소액의 당비를 내는 당원을 많이 가진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많이 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대부분의 정당이 사활을 걸고 '당비 내기 캠페인'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 경우 '품삯 당원'이 점차 사라지고 이를 관리하는 사무국 조직도 줄일 수 있으며 정당의 사당화를 방지할 수도 있다. < 대표집필=김용호 인하대 교수 > [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한국경제신문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