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 힐스. 당시만 해도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일본 도요타사가 자동차 본고장인 미국 시장을 처음으로 노크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전시회 샘플로 수출된 두 대의 자동차가 전시장이 있던 베벌리 힐스 언덕을 넘는데 실패한 것. 고속도로 주행 시범에서도 시속 1백km의 속도도 내지 못하는 등 망신이 이어졌다. 미국인들의 조롱을 한껏 뒤집어쓴 도요타의 경영진은 곧바로 최고의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몰두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현재 도요타는 세계시장 점유율 10% 안팎의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미국시장 점유율도 2000년 9.3%에서 지난해엔 10.2%로 올라섰다. 이제 미국인들 사이에서 도요타차는 잔 고장이 적고 수명이 긴 '초우량차'의 대명사로 통한다. 도요타의 미국시장 개척과정은 최고의 신뢰성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신뢰받는 제품이 초일류다 =신일본제철은 지난 66년 윤활제 신뢰성연구소를 설립해 70년대 이후 오일 교환주기와 사용량 유종(油種) 등을 표준화했다. 80년대 초반엔 마찰.마모 연구와 고장방지.고장통계시스템 개발에 연구인력을 집중 투입, 제품 신뢰성을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미국의 US스틸을 제치고 세계 1위 업체로 부상했다.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작은 섬에 있는 스트릭스사는 전세계 커피포트 핵심 부품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사가 공급한 부품에 대한 주의사항을 조립업체가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즉시 납품을 중단한다. ◆ 신뢰성 전문센터가 받쳐 준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는 기업의 신뢰성 기술개발을 도와 주는 전문 연구기관이 많다. 미국의 와일리연구소는 지난 49년 설립된 시험평가 전문기관으로 연구인력만 1천3백여명을 거느리고 있다. 헌츠빌 알링턴 엘세군도 등 미국 각지에 분야별 시험장을 갖추고 정부와 기업의 신뢰성 용역을 수행한다. 각 산업에 사용되는 5백여개 재료의 물질 특성과 시험방법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모든 제품의 고장.수명 실험을 대행해 연간 시험평가 수수료로만 1억3천5백만달러를 번다. 일본의 도레이연구센터(TRC)는 연구인력 4백여명 규모의 세계적인 유기.무기재료 분석 연구소다. 지난 99년엔 3천3백여개 회원사로부터 연구 과제를 위탁받아 62억7천만엔의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