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역사는 기업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공정위가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처음 공정거래법 제정의 필요성이 거론됐던 시기는 지난 1963년. 소위 '3분(三粉) 사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부 수입업자들은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의 부족현상을 악용, 이들 제품의 판매가격을 정가의 3∼4배로 높여 폭리를 취했다. 이 때 공정거래법 제정이 강하게 주장됐으나 재계의 반발로 묵살됐다. 이후 66년과 69년 71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입법화가 시도됐지만 그때마다 '경제성장 우선'이라는 개발 논리에 밀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정위가 설립된 것은 80년 군부 쿠데타 때문이었다. 당시 신군부는 정치.사회.경제 분야의 개혁을 외쳤다. 경제 부문에서는 그동안 재계의 견제로 입법이 무산됐던 '공정거래법'이 상징적인 개혁 조치로 추진됐다. 그때의 일화 한 토막. 80년 7월 전윤철 당시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정책관실 총괄과장은 김재익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의 다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김 국장은 신군부의 눈에 띄어 국보위 경제과학위원장에 발탁되면서 당시 경제부문 최고 실세로 떠오른 참이었다. "당신 하던 일 있지? 그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공정거래법요? 그거야 경제를 정부의 간섭 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독점의 힘은 배제하자는 거죠. 그래야 물가도 잡힙니다." "그거야! 그거 하자." 17년간 입법화되지 못했던 공정거래법은 그해 12월25일 신군부 주도의 입법회의를 통과했다. 물론 그 후 공정거래법은 재계와 정부 사이를 떼어놓는 최대의 걸림돌로도 작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