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단위조합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해온 신용카드 사업을 9년여만에 중단토록 한 금감원 조치는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사업 주무기관이 농협중앙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카드가입자들이 겪어야 할 불편은 물론 카드사업에 수익의 상당부분을 의존해 온 단위농협들에는 사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독당국이 9년간이나 묵인했던 사업을 갑작스레 문제삼고 나선데 대해 농협 소관부처인 농림부도 이의를 제기하는 분위기인 데다 카드사업 정리로 인한 인원감축과 관련, 민주노총까지 당국의 '일관성 없는 행정'을 비판하고 있어 향후 처리 과정이 주목된다. 단위 농협은 재정구조가 취약한 서민 금융조합인 데다 이용자 역시 농어촌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주요 수익원으로 삼아온 카드사업에서 철수할 경우 수익력에 큰 구멍이 날 것이라는게 일선 단위 농협들의 주장이다. 이번 금감원 조치는 '8.8 국회의원 재.보선'과 12월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을 앞둔 시점에서 불거져나온 것이어서 자칫 정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 단위 농협 카드업무, 무엇이 문제였나 =농협 중앙회가 카드사업을 인가받은 것은 지난 87년. 그러나 중앙회와 나란히 각 지역의 단위 농협도 93년부터 카드사업을 시작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중앙회는 카드에 관한 업무를 전반적으로 모두 할 수 있지만 단위 농협은 제한을 받는다. △신규회원 자격과 카드발급 심사 △카드이용대금 사후관리·상환과 같은 카드의 '본질 기능'은 단위 조합이 할 수 없다. 그런데 카드 사업이 돈벌이가 되는 것은 주로 이들 업무에서 나오는 연회비나 수수료 때문이다. 실제로 단위 농협은 카드사업에서 수익을 내면서 관련 인력을 확충하는 등 이 부문의 역량을 키워 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간 수익이 12억원인 모 단위 농협의 경우 카드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이 10억원 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 강경한 금융감독원 =금감원은 그동안 단위 농협의 카드사업이 잘못됐다며 '정상화'를 요구했다. 금감원은 △회원.가맹점 모집 △매출전표 모집 △현금 서비스와 같은 '부수 기능'은 단위 농협에 위탁이 가능하지만 본질 기능은 위탁이 안된다는 업무규정 조항을 들이댔다. 96년 정부 감사에 대해서는 "99년도 금감원 출범전의 일이고 이후 검사주체가 바뀌었다"며 "단위 농협의 딱한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규정은 규정'"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지난 3∼4월 금감원이 신용카드회사들에 대해 일제 검사를 벌이게 된 것은 카드 남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꼭지점에 달하면서 비롯됐다. 이후로도 각종 강력사건이 카드빚 때문이었다거나 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남발된다는 지적이 연일 신문지면에 오르내리면서 카드 정상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여전히 심한 상황이다. 금감원으로서도 다른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