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컴 CEO인 존 시즈모어는 2일(현지시각)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주가급락과 대출중단 등으로 회사의 앞날을 한치앞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 탓이다. 그는 "이메일의 70%가 월드컴 네트워크를 통해 오가는 등 월드컴의 생존은 국익과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지만 반응은 그야말로 썰렁했다. 파산의 그림자는 1일 나스닥시장에서 이미 깊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거래가 중지된 이후 처음으로 거래가 재개된 이날 83센트에 출발한 월드컴 주가는 93% 수직 하락,6센트로 떨어졌다. 지난 99년 6월 62달러까지 올랐던 주식 가치가 3년만에 1백분의 1도 못되는 휴지조각으로 변모한 것이다. 월드컴 주가는 2일 대량거래와 함께 소폭 상승했지만 증시에선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5일 상장폐지가 사실상 확정된 탓이다. 세계 2위의 통신공룡이 부실회계 사실이 들통난 지 꼭 10일 만에 증시에서 내몰리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은행들도 이미 42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대출계정(크레딧라인)을 끊겠다고 선언했고,이중 10억달러를 당장 갚으라고 통보해 월드컴의 파산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거대공룡의 몰락은 38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분식회계 규모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다. 물론 이 숫자는 조사결과에 따라 더욱 늘어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분식회계 수법이다. 월드컴은 각종 비용을 투자로 계상하면서 그만큼 이익을 부풀려왔다. 쉽게 말해 개인적으로 쓴 돈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월가 전문가들도 지난 98년 MCI를 3백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15년 동안 무려 60여개 기업을 인수하면서 수반되는 일부 회계처리의 잘못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같은 수법은 용서받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월드컴을 거대기업으로 키운 뒤 3백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지난 4월 사임한 버나드 에버스 전 회장이 자신의 주식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회사에서 4억달러 가량을 빌린 것으로 밝혀지는 등 '도덕적 해이'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차대조표를 사기치는 기업은 그냥 놔두지 않겠다"며 단호한 대처를 약속하는 등 그동안 기업들의 분식회계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정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 실제 월드컴쇼크는 AT&T 퀘스트커뮤니케이션 등 통신업체나 통신장비업체들은 물론 금융 반도체 등 주요 업종에 직격탄을 퍼붓고 있다. '월드컴 사기'가 드러난 이후 주가가 연일 폭락하면서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은 2일 1,400선이 무너진 채 6년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다우도 9,000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뒤늦게 나선 정부대책이 어떤 실효를 거둘지는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엔론에서 월드컴까지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는 부실회계 스캔들은 당분간 미국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어두운 그림자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