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27일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발표하면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KAMCO)의 '재정융자특별회계(재특) 융자금 상환의무'를 면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예보 등이 공적자금 조성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 뒤 발생한 이자부담을 재특에서 지원(융자)해 왔는데 그에 대한 상환의무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정책의 일관성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원래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노력을 강제한다'는 의도에서 지원금을 '출연'이 아닌 '융자' 형태로 줬다. 하루빨리 공자금을 회수해 이자까지 갚으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예보는 보유 현금이 부족해 회수된 자금으로 이자를 상환하기는 커녕 금융권 구조조정에 재투입하기에 급급한 상태다. 정부가 예보의 이자부담까지 재정에서 떠안기로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예보에서 갚으나 재정에서 부담하나 정부 부담이긴 마찬가지라는 논리도 동원됐다. ◆ 재특 예산은 제2의 공적자금 =재특은 1954년 정부가 해외에서 무상으로 원조받은 자금을 재원으로 전후(戰後) 복구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대충자금 특별회계'에서 비롯됐다. 그동안 주로 △집중 육성산업 지원 △사회기반시설(SOC) 확충 △농어촌 지원 △벤처 지원 등 정부 주도의 중장기 사업을 지원하는 채널로 이용됐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엔 전체 예산의 60∼70%가 공적자금 이자(구조조정자금)를 지원하는데 돌려졌다. 구조조정자금은 또 다른 용도로 쓰일 때와는 달리 무이자 형태로 나갔다. 이 때문에 재특이 특정산업 지원이라는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제2의 공적자금'으로 변칙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 국민세금으로 매년 1조원씩 적자 메워줘야 =정부는 재특을 장기적으로 정리해야 할 항목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재특의 자산 규모는 총 55조원. 이중 부채가 38조원이다. 순자산이 약 17조원인 셈이지만 예보 등에 대한 융자금(18조원)을 채권에서 상계할 경우 1조원의 순자산 부족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만큼은 국민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재특의 만성적인 역마진 구조가 문제다. 재특은 주로 일반 회계와 각종 기금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평균 조달금리는 연 6.7∼6.8%다. 그러나 융자 금리는 이보다 낮은 6.18%대. 따라서 구조조정 자금을 지원하지 않더라도 매년 1조원 안팎의 돈을 지원받아야 한다. 변재진 기획예산처 공보관은 "재정이 수익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간에서 충분히 떠맡을 수 있는 사업을 재정에서 계속 적자를 보며 지원할 필요는 없다"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부 주도의 융자사업이 사라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